경제·금융

[리빙 앤 조이] 남해, 세월도 쉬었다 가는 108층 긴 다랑논…

'최상급' 죽방렴 멸치…드라마 '환상의 커플' 촬영…골프리조트·독일 마을 등 유명


경남 남해(南海)는 한국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데도 지명에 섬 도(島)자(字)가 들어가지 않는다. 제주도, 거제도, 강화도 모두 ‘섬 도’ 자가 들어가는데 왜 남해는 그저 남해일까. 국토의 남쪽 바다를 뜻하는 ‘남해’와도 헷갈리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설이다. 통일신라 때부터 남해를 그저 남해로 불러왔고 요즘은 행정상으로 남해 주도(主島)와 68개 섬을 더해 남해군이라고 부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섬은 섬이되 지명에는 섬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는다. 지난 73년 남해대교가 개통하면서 육지나 다름없는 섬이 됐으니 이젠 ‘도’라는 말이 굳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남해의 해안선은 그야말로 그림과 같이 아름답다. 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면 왼쪽에 있던 바다가 어느새 오른쪽에서 나타났다, 다시 왼쪽에 나타난다. 해안선의 굴곡이 심한 전형적 리아스식 지형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바닷가 곳곳에 떠있는 작은 섬들은 푸른 바다에 운치를 더한다. 남해는 자연도 좋지만 예부터 내려오던 인공물 중 유명한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층층이 개간한 다랑논이고, 또 하나는 지족면의 죽방렴이다. 이 고장 말로 ‘달갱이’로도 부르는 다랑논이 밀집해 있는 가천면 다랭이 마을엔 현재 59가구가 살며 논농사를 짓고 있다. 다랑논은 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층층으로 된 구조인데다 각 층의 면적이 적어 농업기계화에 한계가 있다.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효율이 낮아 먹을 것이 풍부한 요즘은 농사를 안 짓는 게 경제적일 수도 있지만 이 지역이 몇 년 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계속 농사를 짓게 됐다. 요즘 같은 철이면 바다로 향하는 산사면에서 층을 지어 바람에 흔들리는 벼포기가 가장 풍성해 특히 아름답다. 다랭이마을의 다랑논이 공교롭게도 108층인 것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다랑논은 논두렁이 긴 것도 특징이다. 대대로 아낙들이 논두렁에 콩을 심었는데, 논두렁 콩은 가장들이 눈감아주는 아낙들의 부수입이었다. 콩 뿐만 아니라 해산물이 많아 ‘바닷가에 나가면 바로 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저런 부업거리가 많았던 남해 아낙들은 용돈은 넉넉했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허리가 빨리 굽는다는 우스개도 전해진다. 죽방렴(竹防簾)은 조상대대로 멸치 등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설치한 시설물이다. 참나무 기둥 300개를 물에 V자로 박은 뒤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 발(簾)처럼 기둥사이에 촘촘히 박는다. 그러면 물은 빠져나가지만 고기는 나갈 길이 없다. 밀물과 함께 육지 쪽으로 들어온 고기가 썰물을 타고 빠져나가면서 V자의 꼭짓점에 갇히게 되는데 이때 배를 몰고 나가 뜰채로 고기를 뜨면 쉽게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지금은 참나무 기둥과 대나무 대신 철제 빔과 그물을 이용하지만 고기 잡는 원리는 똑같다. 죽방렴이 많은 곳의 지명이 만족을 안다는 ‘지족’(知足)면인데, 그 이름의 유래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욕심 부리지 않고 조업하는 죽방 어업과도 관련이 있을 거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말이다. 죽방렴에서 잡은 고기 중에서는 멸치를 최고로 친다. 이는 그물로 잡은 멸치에 비해 몸에 상처가 월등히 적어 맛과 형태가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서울서 1㎏당 20만~30만원에 팔리는 남해 죽방멸치는 첫눈에 보기에도 반짝반짝하고 모양이 곧으며 맛이 깊다. 남해에서 최근들어 유명해 진 곳은 힐튼남해골프&스파리조트와 독일마을이다. 두 곳 모두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힐튼남해가 있던 자리는 원래 인근 광양 앞바다의 준설토를 방치해 둬 깔따구, 모기, 파리 등 해충이 들끓던 곳이었다. 이곳을 매립해 땅을 돋궈 올려 최고급 리조트와 골프장으로 개발했다. 국내서 가장 럭셔리한 국내 휴가지로 거론되는 곳인데다 환경 측면에서도 모범적인 개발 사례라 다른 지차체들이 벤치마킹 대상 1호로 삼는다. 독일마을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개발한 전원형 주택단지다. ‘환상의 커플’ 주인공 장철수가 조카들과 살던 그림 같은 집이 바로 이 동네다. 독일에서 20년 이상 살던 교포들을 대상으로 부지를 분양했고, 이후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예쁜 전원주택이 하나 둘씩 들어섰다. 현재 독일마을에는 15가구가 살고 있는데 주로 어려웠던 시절 간호사로 독일에 나갔던 교포와 독일인 남편 부부인 경우가 많다. 몇몇 집은 민박을 운영하니 관심을 가져볼 만 하다. 단, 독일마을에서 밤 늦게까지 소란스럽게 즐기는 것은 금물. 저녁 10시 이후에 떠드는 관광객을 한인 아내들은 이해할 지 몰라도 독일인 남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여름엔 경찰에 전화를 거는 독일인도 많았다고. 남해군 사람들은 남해가 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안타까워 ‘보물섬 남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개발해 알리고 있다. 물론 남해에 보물은 없다. 그러나 남해에는 보물과도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바다의 낭만이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