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지방정부 전시행정이 스페인 재정위기 부채질

치적 쌓으려 지은 각종 시설 수익 못내고 돈먹는 하마로<br>중앙 정부 부실로 이어져

발렌시아 과학공원


스페인 지방정부가 치적 쌓기를 위해 무분별하게 문화ㆍ교통시설을 건립한 게 재정파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나라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전시행정으로 국제대회 유치, 대규모 청사설립 등에 나섰다가 파산위기를 맞은 것이 스페인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5월31일 BBC는 스페인 지방정부가 우후죽순처럼 건립한 문화ㆍ교통시설이 지방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이는 중앙정부의 재정적자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의 전시행정이 재정위기를 더 부채질하고 있는 것.

대표적 사례가 발렌시아주 정부가 설립한 과학공원이다. 이 공원은 지난 1998년 문을 열었지만 아직도 6억유로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고 있다. 이자 등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앞으로 7억유로가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발렌시아는 지난해 3월 1억5,000만유로 규모의 신공항을 또다시 완공했다. 이밖에 마드리드의 알카콘 지역도 문화예술센터 건립으로 1억7,000만유로를 쏟아부었고 바스크ㆍ카스티야라만차 또한 미술관과 공항ㆍ철도 등에 막대한 예산을 집행했다.


문제는 이처럼 야심차게 건설된 이 문화ㆍ교통시설들이 수익을 내지 못한 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렌시아 신공항의 경우 비행기 한 대도 이착륙하지 않고 있고 카스티야라만차의 공항과 철도도 이용승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알카콘 문화예술센터는 추가 공사대금을 내지 못해 폐허로 남아 있다. 최근 취임한 데이비스 페레스 가르시아 알카콘 시장은 "(이미 건립된 문화ㆍ교통시설들이) 세금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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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무분별한 건설붐은 지방재정을 빠르게 악화시키고 있다. 발렌시아의 경우 지역 내 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이 2007년 11%에서 지난해 20%까지 치솟았고 바스크는 1%에서 8%로 여덟배나 뛰었다. 카스티야라만차도 3%에서 10%로, 마드리드 또한 6%에서 8%로 치솟았다.

지방정부의 재정적자도 심각한 수준이다. 카스티야라만차의 지역 내 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7%를 웃돌았고 발렌시아도 4%에 근접했다. 이는 중앙정부가 권고한 1.5%를 훌쩍 뛰어넘는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막대한 빚도 갚아야 하고 중앙정부의 권고치도 맞춰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구멍 뚫린 지방정부의 곳간은 스페인 정부의 위기로 전염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8.9%로 지난해의 8.5%보다 악화됐다. 유럽위원회는 오는 2013년까지 이 수치를 3% 이하로 줄이라고 권고했지만 이 추세라면 규정을 지킬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정부가 재정파탄이 나든 말든 너도나도 문화ㆍ교통시설 건립에 나선 게 중앙정부의 재정부실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기적의 건축'을 집필한 라처 모익스는 "이웃 지방이 아름다운 새 건축물을 갖고 있는데 우리라고 뒤질 수는 없다.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지역의 랜드마크로 삼아야 한다는 지방정부의 심리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쳐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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