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심층진단] 다중채무자보다 무서운 동시채무자

연체자 중 동시채무자 10%로 급증… 금융권 새 부실뇌관<br>2금융서 중개인 통해 고의로 한도이상 대출<br>행복기금·개인회생을 빚 탕감 탈출구 악용

채무상담을 받기 위해 서울 명동에 위치한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다중채무자가 관련 서류를 점검하고 있다. /서울경제DB



한국에 이상 조짐… 대란 터질 위기 상황
[심층진단] 다중채무자보다 무서운 동시채무자연체자 중 동시채무자 10%로 급증… 금융권 새 부실뇌관2금융서 중개인 통해 고의로 한도이상 대출행복기금·개인회생을 빚 탕감 탈출구 악용

이유미기자 yium@sed.co.kr














채무상담을 받기 위해 서울 명동에 위치한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다중채무자가 관련 서류를 점검하고 있다. /서울경제DB

















두 자녀를 둔 가장인 정훈기(36ㆍ가명)씨. 그는 2년 전 주식투자에 실패하며 시중은행과 2금융권에서만 7,000만원에 육박하는 빚을 졌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양육비 부담에 이제는 원금상환은커녕 이자를 감당하기도 버겁다.

그런 정씨는 최근 대출중개업자로부터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신용등급이 낮아 2금융권에서도 수백만원 이상으로는 추가 대출이 어려운 정씨에게 '2금융권과 대부업체 등에서 2,000만원을 한번에 융통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정씨는 "(브로커가) 빚규모가 늘어나도 국민행복기금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추후에 원금이나 이자를 감면 받을 수 있어 오히려 이득이라는 말에 추가 대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국민행복기금이 공식 출범도 하기 전 금융시장 곳곳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다양한 방법으로 확대, 진화하고 있다. 여러 금융회사에 빚을 진 저소득 다중채무자를 구제하겠다는 게 국민행복기금의 취지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의 취재 결과 채무탕감을 노리고 고의로 빚규모를 늘리는 '동시채무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시채무자는 대출중개인을 통해 동시에 여러 금융기관에서 '본인의 한도 이상'으로 대출을 끌어 쓰는 악성채무자들을 말하는 금융계 신조어다. 국민행복기금 출범 전 빚을 당겨 쓰는 단순 모럴해저드가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금융회사에서 빚을 내는 동시채무자가 도드라지는 최악의 대출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가뜩이나 경기침체 및 수익률 악화로 시름하는 금융계에서는 동시채무자를 새로운 부실의 뇌관으로 지목하고 있다.

◇2금융권, '다중채무자보다 무서운 동시채무자'=금융계에서 동시채무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10월부터다. 금융당국이 '서민금융기반 강화대책'을 마련하고 그 일환으로 개인신용평가제도 개선안을 시행하면서부터다. 당시 금융당국은 저신용 계층이 대출 신청을 위해 시중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신용정보를 조회할 경우 해당 조회기록을 개인의 신용등급 산출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울러 조회기록도 타 금융기관에서 열람할 수 없도록 했다.

그동안은 저신용자들이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용도를 조회만 해봐도 곧바로 신용등급이 하락해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이 어려웠던 모순이 있어왔다. 이러한 악순환을 차단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당초 취지였지만 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동시채무자들이 등장하게 됐다.


대출 신청부터 대출 승인까지 2~3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사실을 악용해 동시에 2~3곳의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에 대출을 신청하는 방식이다. 대출 신청시 채무자의 신용정보 조회기록을 금융사가 서로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채무자가 복수로 대출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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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동시채무자는 명백히 '사기'에 해당되지만 현재 시스템 아래에서는 대출 과정에서 동시채무자를 필터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국민행복기금ㆍ개인회생'이 만병통치약인가=박근혜 정부가 대통령의 공약사안이기도 한 국민행복기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부터 빚을 미리 당겨 쓰는 모럴해저드 현상이 벌어져왔다. 여기에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져온 동시채무자까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올 들어 채권추심팀에 접수된 연체자 중 동시채무자 비율이 10%에 달할 정도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채무자에게 개인회생을 부추기는 법무사 사무소나 브로커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대출) 사례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동시채무자들이 국민행복기금이나 법원의 개인회생제도를 '원금과 이자를 감면 받을 수 있는 탈출구'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법원의 개인회생 숫자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올 1월 말 기준 법원의 개인회생자 수는 8,868명에 달했다. 이는 서민금융기반 강화대책 시행 이전인 2011년 1월 4,134명에 비해 2년 사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동시채무자의 증가 등 모럴해저드 양상이 확대되면서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의 연체율에 적신호가 켜진 동시에 채권추심회사들도 수익률 악화에 고심하고 있다.

실제 국내 채권추심업계 상위 5개사의 지난해 말 매출은 2,268억원으로 전년 동기(2,395억원) 대비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상위 5개사 중 일부 채권추심업체의 경우 전년 대비 매출 감소규모가 30%에 육박하는 곳도 등장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채무자들이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단은 (채무를 갚지 말고) 버텨보자는 심리가 강하다"며 "이 중에서 특히 동시채무자는 국민행복기금이나 개인회생에서 제외하는 등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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