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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부터 3월까지 서울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 600가구를 대상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에너지 고지서를 시범 발급한 결과 3개월간 무려 평균 10%의 전기료를 절감하는 깜짝 효과를 얻었다. 가정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엄마, 가장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빠라는 점에 착안해 고지서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꾼 결과였다.
디자인이 단순히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들어 내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고 에너지 절감 등 사회 이익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정부는 앞으로 변경된 디자인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지털융합팀장은 "1년 전국 주택용 전기 사용액을 감안할 때 10% 절감시 7,000~8,000억원의 예산을 아낄 수 있다"며 "에너지 고지서 사례처럼 다른 공공분야도 서비스디자인 도입을 통해 국민 인식과 행동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서비스디자인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제기되고 있다. 공공서비스 분야는 시장 경쟁을 통한 발전이 어려운 만큼 혁신을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서비스디자인 도입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것. 업계에서는 이를 위해 ▦공공영역 서비스 개선을 위한 로드맵 마련 ▦서비스디자인 표준모델 개발 ▦공공서비스디자인 혁신 사업 실시 등을 단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은하 이음파트너스 디자인연구소 연구원은 "이미 유럽 각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공공서비스디자인 개념이 보편화돼 있으며 서비스디자인업계에서도 최근 공공서비스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분위기"라며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가치와 효율성이 높은 서비스디자인을 활용해 공공서비스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팀장은 "공공서비스디자인은 대체로 성과관리가 되지 않고 있어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계획과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공공서비스 개선은 사회시스템 전반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각 정부부처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을 비롯해 서울시, 경기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서비스디자인 혁신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올 1월 전담팀을 결성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연구ㆍ개발(R&D) 사업에서 서비스디자인 관련 과제를 매년 늘려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서울디자인재단 6개 사업팀 중 4개팀을 서비스디자인팀으로 개편했다. 경기도는 디자인총괄본부를 중심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공공서비스디자인 로드맵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에 그치지 않고 좀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공공서비스디자인 개혁을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디자인 도입에 앞서 행정부처별 칸막이를 허물고 공급자인 공무원 중심에서 수요자인 국민 중심의 서비스로 인식을 대전환하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성혜 한국서비스디자인협의회장은 "공공서비스디자인 혁신을 위해서는 공급자인 정부에서 수요자인 국민 중심으로 서비스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며 "국민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조사 방법부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개 디자인이라고 하면 '보기 좋은 것' 수준으로 생각하는데 공직자들의 생각과 행동 패턴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공직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공공서비스디자인으로 국민들의 행위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공공서비스디자인이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성과주의에 매몰돼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부ㆍ지자체나 디자이너 개인의 시각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디자인을 이용하는 지역민들의 사회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 여 연구원은 "우리나라 공공디자인은 각 지역의 역사, 문화, 공동체 특성 등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공공디자인의 핵심 가치는 사회적인 소통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