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4일] 시드니 라일리


보어전쟁과 러일전쟁, 레닌 암살 미수. 시드니 라일리(Sidney Reilly)의 흔적이 배인 사건들이다. 라일리는 영국이 페르시아(이란) 유전을 선점하는 데도 기여한 거물급 스파이. 영국뿐 아니라 러시아와 독일ㆍ일본의 4중 스파이였다는 의심도 샀다. 출생과 성장과정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1874년 3월24일 러시아 오데사에서 모친의 혼외정사로 태어나 실제 아버지인 유대인 의사를 따라 빈에서 화학을 공부했다는 설과 러시아에서 차르에 항거하다 수감생활을 했다는 설이 엇갈린다. 확실한 점은 브라질에서 영국군의 민간요리사로 일하던 중 원주민의 공격을 받은 정보장교를 구해준 후 첩보원이 됐다는 점. 보어전쟁에서 네덜란드의 동태를 염탐하고 러일전쟁에서는 여순에 잠입해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영국에 보고, 일본의 승전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라일리를 전방위로 써먹었다. 1918년 레닌 암살 미수 사건의 주역도 록하트 영국 공사와 라일리였다. 영국에 돌아와 훈장까지 받았던 그는 1923년 소련에 잠입하다 체포돼 1925년 11월 처형당했다. 영국이 라일리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최근이지만 서구에서는 낯설지 않다. 수많은 소설과 함께 1980년대 중반 영국과 미국에서 ‘라일리, 최고의 스파이’라는 TV미니시리즈가 방영됐기 때문이다. 영화 007시리즈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의 원형 모델답게 라일리는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면 경쟁자 독살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6차례 결혼 이외에도 묵상서의 저자로 유명한 캐릴 하우스랜더를 비롯한 수많은 애인을 거느렸다. 라일리의 최대 성과는 페르시아 유전 확보. 프랑스에 채굴권을 넘기려던 업자를 설득해 영국이 중동유전을 장악하는 데 기여했다. 석유산업 최초의 산업스파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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