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0월 5일] 동굴에 갇힌 구조조정

동굴 속에서 횃불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동굴 밖의 현실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동굴 속 어둠의 세계가 현실이라고 고집을 부린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저술한 '국가' 속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이다. 채권단 중심의 자율적 구조조정이 바로 이 같은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및 재무구조개선에 미온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금을 회수하거나 신규여신을 제한하는 등 실질적인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동부그룹이다. 이들은 일시적인 기업실적 개선을 이유로 채권단이 수용하기 힘든 높은 매각가격을 제시하며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부그룹은 동부메탈 매각가격을 7,000억원대로 제시하고 있는 데 반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동부메탈 기업실사를 토대로 인수가격을 3,500억원대로 책정했다. 동부메탈 매각가격을 놓고 동부그룹은 인수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의 2배가량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동부그룹은 산은과의 협상을 잠정 중단하고 새로운 인수자를 직접 찾아 나서며 매각작업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마찬가지다. 대우건설 풋백옵션 자금 해결을 위해서는 금호생명 매각에 속도를 내야 할 입장이지만 매각작업은 1년째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정책당국과 금융시장에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금융위기를 맞아 재빠르게 구조조정에 나서며 금융위기 이후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면서 체질강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경기회복 기대감을 이유로 구조조정 작업을 미적거리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매각가격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한 마음가짐의 차이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플라톤이 비웃고 있는 동굴 속의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계열사 매각이 뼈를 깎는 아픔이겠지만 채권단과 시장이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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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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