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4월 02일] '물갈이'란 말 무서워

언제부턴가 ‘물갈이’란 말이 인적 쇄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인간과 지구 생명체에게 절대적 요소인 물에 대해서는 새삼 그 중요성 논란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토록 중요하고 생명의 근원인 물을 이용해 탄생된 말은 무수히 많다. 이런 말들은 해학적으로 회자되기도 하고 달갑지 않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를 사납게 사용하는 것 같다. 과거의 북청물장수,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 물, 물방앗간 등은 나름대로 사랑이나 애환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요즘 쓰이는 물 먹인 소, 물고문, 물먹이기, 물타기 등을 보면 살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물갈이란 말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물갈이란 논의 물을 가는 것을 말하는데 최근에는 잘못된 것과 오염된 것을 새로 바꾼다는 뜻으로 통한다. 물갈이는 물의 일부만 바꿀 경우 새로 투입된 물은 기존에 있는 물과 섞여 바로 오염되기 때문에 100% 순수한 물을 한꺼번에 갈아 넣어야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20% 또는 45%의 실적형 부분 물갈이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물갈이 하고 남아 있는 80%와 55%의 사람들은 무슨 물이며 물갈이된 사람들은 무슨 물이고 물갈이 시킨 사람들은 무슨 물인지 묻고 싶다. 사람을 물갈이의 물로 비유하니 모두 다 그 물이 그 물이 돼버린다. 물 몇 바가지 퍼내고 새로운 물 몇 바가지 집어넣어봤자라고 비칠 수 있다. 따라서 인적 쇄신을 물갈이로 표현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 없이 모두에게 상처만 준다. 정치권에서는 항상 상생의 정치를 한다고 한다. 상생의 정치를 하려면 그에 합당한 언어의 사용도 매우 중요하다. 모두에게 도움 되지 않는 말 하나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반목과 질시를 불러일으켜 사회 갈등까지 조장한다. 화합과 상생으로 이끌어내는 교양 있는 언어의 선택이 필요하다. 또 물갈이로 바꾸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문화유산과 산삼은 오래될수록 그 품격과 가치가 높다. 물갈이 명분에 이러한 품위와 품격의 높은 가치와 이상들이 물에 쓸려나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러고 보니 물갈이는 너무 무서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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