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0월 29일] 금융위기 극복의 지혜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전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대한 충격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우리 경제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조차 이번 금융위기와 이어지는 경기침체가 지난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가장 험난할 것이라는 견해가 공감을 얻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IMF 위기를 겪은 우리 경제는 이번에는 원죄(原罪) 없는 경제적 재앙을 겪고 있는 셈이다. 적정한 경제성장, 금융과 재정의 건전성, 주력산업의 세계적 위상, 튼튼한 외환보유고 등 경제의 펀더멘털에 커다란 이상 징후가 없는데도 10년 전과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의 현 위기의 본질에 관해 ‘원죄론’ 보다는 ‘공포론’이 설득을 얻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 경제에 잘못이 있다면 무역의존도가 너무 높고 해외자본의 유ㆍ출입이 자유로우며 원화가 주변국 통화라는 것이다. 금융시장이 연쇄적으로 혼란에 빠짐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안전자산의 선호와 기축통화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주요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안전자산인 국채와 위험자산인 은행채 등과의 금리 격차가 비정상적으로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규모가 매우 작아 미국의 금융부실로 인한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도가 크게 영향받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외 차입시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과도한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받고 있다. 달러화에 대해 원화가 비정상적인 약세를 보이는 것도 원화의 국제적 유동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의 실체가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두려움에 있다면 대응책은 공포 해소와 신뢰 회복에 두어져야 한다. 금융위기가 심리적 공황으로 악화되는 경우에는 금리ㆍ조세 등 거시정책 수단은 제한적인 효과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시장주체들의 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어 유동성 공급이나 자산 매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혼란이 진정될 때까지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보다는 ‘크고 단호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의 지혜를 되살려 신용 공급, 지급 보증, 부실자산 매입 등과 같은 과감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는 방안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필요한 곳에는 언제나 정부가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투자자들과의 신뢰 게임을 상생(相生)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지금의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바야흐로 자산거품의 붕괴를 지나 신용경색의 과정을 겪고 있다. 우리 금융위기의 실체가 공포론에 가깝다면, 선진국 금융시장의 연착륙과 정부의 적절한 유동성 공급이 뒷받침되면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으로 국내 금융시장도 이른 시일 안에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려스러운 점은 금융위기 이후에 예외 없이 실물경제의 침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잉태된 미국 경제는 이미 3분기부터 산업생산과 소매판매가 감소세로 돌아섰고 실업률도 6%를 넘어서고 있다. 정도와 시차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과 일본 경제도 비슷한 경기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우리 경제의 중요한 성장축인 수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수출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정부는 동원가능한 내수 진작책을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재정 악화를 감수하고라도 재정 지출, 소득 보전 등을 통해 내수의 불씨를 꾸준히 지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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