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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광장으로 들어선다. 광장은 사방으로 트여 있고 출입을 규정하는 문이나 야트막한 경계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구나 필요에서건 호기심에서건 발걸음을 잠시 옮기면 그대로 광장이다.
충남 서천의'봄의 마을'이 주는 첫 인상은 '개방'이다. 3,604㎡의 대지에 광장을 중심으로 2~4층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이 다섯 동이나 둘러서 있지만 그 앞에서 잠시라도 머뭇거릴 필요 없이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광장의 바닥은 건물과 같은 노출콘크리트다. 같은 재질의 광장과 건축물이 일체감을 더해준다. 외부와 내부가 같은 공간임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내부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인정으로 쓰이는 건물 외벽은 광장의 야외 무대다. 어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더라도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배치가 인상적이다.
'봄의 마을'은 서천군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다. 각각의 건물은 목적에 맞게 다양한기능을 갖추고 있다. 4층 규모의 3개 동은 각각 청소년문화센터와 여성문화센터, 청소년 및 평생교육시설로, 2층 규모 건물 2개 동은 노인회관과 임대상가로 활용된다.
광장에서 재잘대던 아이들이 맨 뒤편 청소년문화센터로 들어간다. 방문한 날이 휴관일인 월요일이었던 탓에 불이 꺼진 방들이 많았지만 내부 전체는 어둡지 않다. 콘크리트와 철골의 물성이 주는 황량함이 넉넉한 채광 덕분에 아늑한 분위기로 바뀌며 해소된다.
청소년문화센터의 옥상 일부는 청소년들의 댄스연습장이다. 전면의 창을 모두 개방하면 무대로 바뀌고 옥상에서 주민들은 학생들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평소 탁구장으로 운영하는 방이 필요에 따라 강연장이나 세미나실로 쓰일 수도 있다. 주민들의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 때부터 세심한 배려 속에 계획된 것이다.
교육시설로 쓰이는 옆 동으로 옮겼다. 1층의 모습이 정겹다. 너댓 명의 학생들이 계단식 마루바닥에 앉아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또 다른 학생들은 테이블에서 음악을 듣거나 노트북에 집중해 있다. 이들을 1층 벽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창을 통해 쏟아지는 가을 볕이 감싸고 있다.
교육시설 맞은편 여성문화센터 1층에는 장바구니 도서관이 있다.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북카페 형태의 쉼터다. 천정에 콘크리트와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게 설계돼 있지만 밝은 조명과 전면으로 탁트인 개방적인 설계 덕분에 포근한 느낌이다.
광장은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봄의 마을'은 광장에서 시작하고 이 곳을 중심으로 모든 이동이 이뤄진다.
설계자는 봄의 마을에'도시의 방'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얽혀 리듬감 있는 '공공의 장소'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천 주민들은 봄의 마을의 광장을 주택의'거실'로, 각 건물을 '방'으로 이해한다. 가족이 집에 들어가 거실인 광장에서 만났다가 학생은 청소년문화센터라는 방으로, 주부는 장바구니 도서관이라는 방으로, 노인은 노인회관이라는 방으로 흩어지고, 다시 만남을 반복한다는 이야기다.
서천군 봄의 마을에선 주민들의 그런 가족 같은 일상이 매일 흥겹게 반복되고 있다.
기획단계부터 '문화장터로서의 광장' 염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