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목표 중 하나인 중소ㆍ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먼저 사업을 일궈 성공한 기업들이 모인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해야 됩니다. 코스닥시장이 활성화하면 성공을 향해 가는 벤처ㆍ중소기업들도 상장에 적합한 경영투명성과 실적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기업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져 국가경제에 활력이 돌 것입니다."
최근 서울 여의도 코스닥협회에서 만난 정지완(57ㆍ사진) 코스닥협회장은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얘기하면 지난 IT버블 때의 혼란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이미 10년도 더 시간이 흐르면서 상장 때 충분히 걸러내는데다 상장 이후에도 솎아낼 기업은 충분히 솎아낼 정도로 시장이 성숙해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오히려 지금처럼 코스닥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는 이른바 '건전한 버블'이 필요하다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관투자가가 펀드를 만들 때 일정 비율의 코스닥 기업을 의무적으로 편입하도록 하고 코스닥전용펀드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등 정부 차원에서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노력으로 코스닥시장이 기술 관련 우량 기업들로 가득 차 미국의 나스닥시장처럼 첨단기술주시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추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정 협회장은 코스닥 기업인 솔브레인의 대표다. 26년 동안 중소기업을 경영해왔고 벤처 붐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기업경영의 절반을 코스닥시장과 함께했다. 그는 올 2월부터 코스닥협회장을 맡아 코스닥 기업들의 권익보호와 코스닥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 협회장은 인터뷰 내내 코스닥시장이 한국 기업생태계의 허리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코스닥시장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새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돌입하면서 고용창출이 되지 않고 기업과 개인들이 경제ㆍ사회적으로 양극화되는 부작용을 돌파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 한국 경제도 지난 몇 십년간의 대기업 육성정책에서 중소ㆍ벤처기업 키우기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죠."
그는 "우리나라 고용의 99%는 중소기업이 책임지고 있다"며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커야 하고 중소기업이 더 큰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코스닥 기업이 커야 한다"고 부연했다.
코스닥시장이 중소기업 중에서도 기업의 성장성과 경쟁력을 인정받은 업체들이 참여하는 시장인 만큼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협회장은 "결국 초기 단계의 중소ㆍ벤처기업을 육성하면 이들이 자본조달을 위해 코스닥시장으로 오게 돼 있다"며 "코스닥시장에 있는 기업들은 우리나라 3만여개의 중소기업들 가운데 엄선된 중소 엘리트군단"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성장한 중소기업들이 있는 시장이 자금조달이 되지 않고 역동성이 없다면 사업 초기의 기업들도 결국 어느 정도 성장을 하다 갈 곳을 잃을 것"이라며 "하지만 코스닥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성장궤도에 오른 기업들도 코스닥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에 부합하기 위해 경영투명성과 기업외형을 갖출 것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생태계의 허리가 더욱 튼튼해 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관투자가가 참여할 수 있게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현재 코스닥시장은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아 시장변동성이 무척 크다. 거래대금 기준 개인투자자가 87%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기관투자가 5.5%, 외국인투자가는 6%가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런 점에서 정 협회장은 기관투자가들이 펀드를 만들 때 코스닥 종목을 의무적으로 편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스닥시장의 투자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기관투자가들이 펀드를 만들 때 편입종목의 약 20%가량을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며 "정부는 코스닥 업체를 의무적으로 담은 코스닥전용펀드 등에 대한 세제혜택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기업의 펀드편입 의무화와 세제혜택 등의 조치가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코스닥시장을 미시적이 아닌 큰 그림에서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봤다.
코스닥시장은 지난 1996년 열렸지만 1997년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까지 자본시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99년을 전후로 벤처ㆍIT버블이 일어나며 벤처ㆍ중소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현재 우리 경제를 이끄는 IT산업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당시 정부가 위기극복 차원에서 코스닥시장을 열면서 IT 관련주들이 코스닥시장에 대거 들어왔다"라며 "결국 그때 큰 기업들이 2000년대 들어 한국을 이끌어갈 IT기업들로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쉬운 것은 시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장을 악용하는 세력들이 생겨나며 자본시장의 핵심인 신뢰를 잃고 작전ㆍ횡령ㆍ배임과 같은 부정적인 면만 부각됐다는 점"이라며 "코스닥시장이 한국 산업의 주축인 IT산업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했지만 시장활성화 과정에서 생겨난 작전세력들 때문에 오히려 악명을 뒤집어쓰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 협회장은 정부가 강력한 지원책으로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해도 지난 IT버블 때와 같이 일부 세력에 의한 시장왜곡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장폐지실질심사의 도입으로 한계기업들이 꾸준히 퇴출되며 시장이 정화됐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0년 상장폐지 기업이 74개사에 달했지만 2011년 58개사, 지난해 48개사, 올해 6월 현재 24개사로 부실기업이 줄어들고 있다.
정 협회장은 "정부가 중소ㆍ중견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하는 대신 감시기능을 강화하면 된다"며 "현재 코스닥시장은 IT버블 때와 달리 제도적으로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정부가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수단을 마련해 시장활성화와 관리ㆍ감독기능 강화를 병행하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코스닥 기업들의 84%가 약 1,300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해 법적 요건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코스닥협회 차원에서도 상장사들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 대상 교육을 확대 실시하고 사회공헌활동을 늘려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 협회장은 국내 중소기업을 일궈온 창업 1세대들이 은퇴를 앞둔 것도 코스닥시장이 당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선에서 은퇴할 시기가 됐지만 회사를 물려주기에는 상속환경이 좋지 않고 그렇다고 상속을 안하고 매각하자니 기업 고용과 경영 노하우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 협회장은 독일 수준의 가업상속공제를 제안했다. 국내의 경우 상장법인의 30%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가업을 승계할 때 20년 이상 가업을 이끌어나가면 최대 300억원까지 상속ㆍ증여세가 공제된다. 독일은 금액한도에 제한이 없고 7년 이상 사업을 이끌 경우 100% 세금이 공제된다.
정 협회장은 "창업 1세대를 이끌어온 기업 경영자들이 70세에 가까운 사람이 많아 가업승계는 코스닥시장의 중견기업들이 앞으로 직면할 매우 중요한 이슈"라며 "어떻게 보면 부의 대물림으로 비쳐지지만 창업 1세대가 축적해온 기업만의 특화된 경영 노하우와 고용보존 측면에서 봐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뗐다. 그는 "해외에서는 몇 백년째 가업을 이어가는 중소기업이 많다"며 "우리는 국회 차원에서도 부의 대물림이라는 측면 때문에 입법화를 주저해 심한 경우 회사를 매각해 기업이 망가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임기 동안 코스닥시장을 첨단기술주시장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초석을 다지고 싶어한다.
"코스닥시장은 우량 기술주와 IT 관련 공기업 등 기술 관련 우량 기업들이 들어와 애플ㆍ구글ㆍ페이스북 등이 있는 미국의 나스닥시장처럼 첨단기술주시장으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벤처ㆍ중소기업들이 코스닥시장에 들어와 글로벌 첨단기술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미력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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