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의원입법 남발현황ㆍ부작용] 민원ㆍ로비에 밀려 대부분 ‘선심성’

`왕성한 의정활동의 결과인가, 건수 올리기나 이익단체 로비의 결과물인가.` 의원입법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극단으로 엇갈린다. 지역주민의 의사를 의정활동을 통해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증거라는 해석과 의원들이 이익단체의 로비에 휘둘리고 의정활동의 순위를 매기는 시민단체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발의해 계류 중인 의원입법 내역을 보면 행정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항목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법안도 눈에 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특정단체의 이익만을 반영하거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건수 올리기식 의원입법을 추진 중인 사례도 적지않다. `왕성한 의정활동`을 가장해 마구잡이식으로 쏟아지는 입법이 정작 국회 자신의 법안심사기능을 약화시키고 정부 주요부처의 행정력을 낭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문제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4당체제로 바뀐 후 국회와의 업무가 더욱 힘들어졌다“며 “특히 의원입법이 봇물을 이루면서 주요 현안보다는 의원입법에 대한 설명자료 등을 준비하느라 업무시간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내고 보자`식 법안 봇물=법개정이 필요 없는 사항이 의원입법으로 제출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온라인디지털 콘텐츠산업을 창업 중소기업 및 창업 벤처기업 세액감면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의안번호 2117)은 행정부의 검토 결과 현재로서도 조세감면 대상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원입법안 2392호는 `세무공무원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세금을 잘못 부과한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공무원과 연대해 손해를 배상하고 당해 공무원에 징계처분하라`는 내용인데 이것 역시 현행 국가배상법ㆍ민법ㆍ국가공무원법에 의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의원들이 관련법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제출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성용 위생용품(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면제`해달라는 의원입법안도 효과가 의문시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소비자들이 받는 면세혜택은 월간 약500원 정도로 미미하다. 반면 생활용품에 대한 면세요구를 촉발할 수 있어 부정적인 파장이 더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역구 관리, 특정집단의 이익 위한 법안도 많아=현재 국회 재경위에 계류 중인 52건의 조세 관련 의원입법안 가운데 지난 회기에서 넘어온 11건을 제외한 올해 새로 의안이 상정된 안건은 총 41건이다. 이 가운데 9개 법안이 농어촌 세제지원과 관련된 것들이다. `2004년 6월 말 종료 예정인 농어촌특별법 5년 연장` `2003년 종료될 조합법인 등에 대한 법인세 저율과세시한 2008년까지 연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농어민 관련 입법으로 의원들은 표를 얻겠지만 농업 부문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농어민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해 농어업 부문의 의원입법안은 가급적 수용하는 쪽이지만 농어촌의 정부지원 의존구조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이익단체가 관련된 의원입법도 많다. `상호신용금고도 신협ㆍ새마을금고ㆍ농협 수준의 비과세 예금 취급을 허용`하는 의원입법안과 `2004년부터 적용 예정인 서화ㆍ골동품의 양도차익 과세를 현행대로 제외`하는 법안 등은 이익단체의 로비가 개입된 흔적이 짙다. ◇행정력 낭비, 이익집단간 갈등도 초래=특정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마구잡이식 의원입법으로 곤란을 겪는 것은 정작 행정부다. 금융감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의원입법 가운데 일부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의원들이 이를 알고 정부부처에 의견조회 형식을 빌어 내용보완을 요구하는 바람에 본연의 업무를 뒤로 미루고 의원들의 입법업무를 보좌하는 데 시간을 많이 뺏기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입법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더욱 첨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입법을 시도했지만 정부부처의 반대로 관철되지 못했다`며 의정을 홍보해 정부부처에 항의하는 소동과 시위도 잇따르고 있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태풍 매미의 피해복구가 시급한 상황에서도 추경안 심사와 의결일정도 정하지 못한 채 뒤로 밀리고 있지만 의원들이 지역구 관련 민원과 입법에 대해 정부부처를 닦달하고 있다”며 “의원입법의 영향을 다각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승량기자 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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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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