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경협사업 채널 다변화 '실리' 노린듯

7대 경협합의서 구속력 유지여부에 관심<br>"북에 끌려가지 말고 현대에 힘 실어줘야"

현대그룹이 김윤규 전 부회장의 축출 이후 북한측과 갈등을 빚으면서 대북사업에서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현대아산 사무실이 들어선 서울 계동의 현대 본사. /김주성기자

북한이 현대를 압박하는 강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현대아산 임직원의 입북을 금지한 것은 ‘현대=대북사업 파트너’라는 등식을 사실상 부정하기 시작한 것으로까지 읽힌다. 이번 조치는 특히 전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가 대변인 담화를 통해 “현대가 본래의 실체도 없고 신의도 다 깨버린 조건”이라고 언급, 지난 2003년 현대와 맺은 7개 경협합의서에 북한이 구속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된다. 재계 주변에서는 이와 관련, “아태평화위가 현대와의 대북사업 전반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한 바로 직후 이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는 점에서 북한의 향후 움직임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우리 측이 기대하는 수준 이상으로 강경하게 현대를 압박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북, 현대 대북사업 독점권 회수 수순 밟나=북한이 현대의 대북사업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올 상반기부터 감지됐다. 북한은 6월 롯데관광에 개성관광 사업권을 제안하는 등 현대측 몰래 남측 기업들과 물밑 접촉을 강화해왔다. 8월에는 롯데관광에 팩스를 보내 공개적으로 개성관광 사업권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한은 급기야 지난 20일 아태평화위 담화를 통해 ‘7대 협력사업합의’도 다시 협의할 수 있다고 밝히며 현대의 대북사업 독점권을 더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심을 감추지 않았다. 현대아산 관계자 3명의 입북금지 조치를 이런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경우 북한이 지금까지 대북사업 파트너였던 현대와의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김규철 남북포럼 대표는 “북한이 대북사업권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감지돼왔다”며 “(현대아산 관계자의) 입북거부 조치로 북한의 채널 다각화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7대 경협합의서’ 구속력 어떻게 되나=북한측의 잇따른 현대의 대북사업 독점권 불인정 발언으로 2003년 현대와 북한이 맺은 ‘7대 경협합의서’의 구속력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현대측은 7대 경협합의서의 무효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는 경협합의 및 부속합의 등을 통해 30년 이상의 독점적 권리를 보장받았으며 남북철도연결 등 7대 협력사업권마저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독점권의 대가로 5억달러를 투자했다는 점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측은 최근 담화를 통해 “7대 협력사업합의서는 해당한 법적 절차와 쌍방 당국의 승인을 전제로 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수정 보충하거나 다시 협의할 수도 있게 돼 있다”며 “합의의 주체가 다 없어진 조건에서 구태여 그에 구속될 이유가 없다”고 강변했다. 한마디로 계약 당시의 현대와 지금의 현대는 ‘주체나 능력이 다르다’는 주장이자 현대의 입장을 인정한다 해도 우리 정부의 승인이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를 인정해야 할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양측간 합의서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얘기하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개성관광은 금강산관광처럼 합의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에 힘 실어줘야=북한이 현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근본 이유는 대북사업의 채널을 다변화해 남측 기업간 경쟁을 유발, 최대한 실리를 챙기겠다는 욕심 때문으로 읽혀진다. 특히 현대가 과거처럼 대북사업에서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길 꺼리는 것도 양측간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현정은 회장이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관행처럼 돼온 ‘플러스알파’(웃돈)를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도 관계를 소원하게 했다는 관측이다. 북한의 최근 태도변화는 따라서 현대에 의존해온 대북관광사업을 원천적으로 바꿔보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 경우 ‘김윤규 카드’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에 불과할 뿐 현재 표면상 드러난 것과 같은 ‘특별한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 주변의 시각이다. 김윤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것이라는 의미다. 김 대표는 “북한이 김윤규씨에 대한 신의를 내세우지만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결국 김윤규 카드는 현대를 압박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하나의 술수”라고 못박았다. 김 대표는 또 “인사권이나 경영권에 개입하면서 계약을 무시하겠다는데 이런 위험부담을 안고 누가 대북사업에 참여하겠느냐”며 반문했다. 현재 진행되는 과정을 볼 때 북한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이 원하는 ‘과실’을 따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재계에선 이와 관련, “북측이 현대와 일방적으로 계약파기할 경우 손해는 북한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며 “현대 역시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스스로 확보하는 노력을 펼치고 이에 맞춰 국민적 여론도 현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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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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