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4월 23일] 검문소 한 번만 잘 통과하면

전쟁을 치른 나라여서 그런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검문소를 볼 수 있다. 헬멧을 깊게 쓰고 턱을 치켜든 헌병의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라는 기계적인 말투와 모습은 매우 친숙하다. 검문소를 지날 때 늘어선 차량 중에서 나만 검문을 받게 되면 마음이 상한다. 베를린 장벽을 지키던 검문소는 자유를 그리던 인간의 절절함이 배어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대치하고 있는 가자지구의 검문소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처절함과 슬픔이 서려 있다. 이처럼 검문소는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 그런데 대부분의 검문소는 한 번만 잘 통과하면 되기 때문에 이것이 일상화될 경우 통과만을 위한 일회성 순간모면의 편법과 요령이 생기게 된다. 이런 검문소식 사고는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개인이나 국가를 성장시키는 데 커다란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인체의 각 기능처럼 자동으로 검문되고 제어되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지기를 희망한다. 이 인체의 ‘검문기관’들은 수시로 작동돼 이물질들을 존재할 수 없게 만든다. 한 곳의 검문을 통과해봤자 곧바로 다음 기능에 의해 축출된다. 헬멧을 쓰고 일부러 검문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러한 형태의 효율적 검문체제가 잘 갖춰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건축물은 준공 한 번만 잘 받으면 되는 제도라서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이 사라지지 않는다. 속도방지턱과 과속측정기는 설치된 그곳에서만 잘 넘어가면 그뿐이다. 아예 위치표시기를 달고 순간만을 모면하는 것이 정의처럼 정당화되는 추세다. 부도를 내더라도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보란 듯이 돈벌이도 할 수도 있다. 맨 위에만 유난히 큰 녀석이 있는 딸기상자는 나를 서글프게 한다. 총선이 끝났지만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식에 기인한 공약시비ㆍ학력위조ㆍ금품살포 등으로 여전히 시끄럽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이 온통 검문소 한 번만 잘 넘어가면 되는 것처럼 보여 혼란스럽다.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21세기에는 이런 방식과 체제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미 선진국가들은 신용지속성을 경쟁력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검문소 한 번만 잘 통과하면 용납되고 통용되는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