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에서 계약서는 작성했다 하더라도 계약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경우에는 계약을 해지 해도 위약금을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모씨는 지난 2005년 자신이 원하던 아파트가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해당 아파트의 주인인 김모씨의 장모인 이모씨와 대리방식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6,000만원의 계약금은 계약과 동시에 지불하고 해제시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했으나, 계약금이 준비되지 않아 당일 300만원을 중개사무소 계좌로, 나머지 5,700만원은 김씨 계좌로 송금하기로 하고 우선 약 380만원이 예치된 자신 명의의 통장을 중개사무소에 맡겼다.
이씨는 계약을 체결한 당일 밤 해외에 체류중인 김씨 부부에게 매매사실을 알렸으나, 김씨 부부는 아파트를 처분할 의사가 없다고 해, 다급해진 이씨는 그 다음날 오전 중개사를 통해 "매매계약이 무효이니 계약금을 보내지 말라"고 전달했다.
그러나 정씨는 이미 계약이 성립된 것이라며 6,000만원을 계약서에 기재된 김씨 계좌로 송금했다. 이씨는 당일 오후 6,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해 정씨에게 되돌려 주려 했으나, 정씨가 이를 거부하자 공탁했고 정씨는 이후 이를 찾아갔다.
정씨는 김씨 측이 계약을 어겼다며 소송을 냈고, 1심은 "이씨가 김씨의 대리권이 없이 매매계약을 체결한 잘못이 인정된다"며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17부(곽종훈 부장판사)는 이같은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매매계약 체결에 있어 매수인이 계약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는데도 이를 교부하거나 실제 그와 동일한 이익을 받은 단계에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면, 계약금계약은 아직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며 “정씨가 부동산중개인에게 380만원이 예치된 통장을 맡긴 것만으로 계약금의 일부가 지급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약정에 따른 계약금이 지급되기 전까지는 계약 당사자의 어느 일방이든 그 계약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이를 파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