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증가하면 캐리 트레이드 투자가들은 일제히 위험자산에서 빠져나갈 것입니다. 문제는 탈출구가 똑같고 문도 좁다는 점입니다."
BNP파리바의 로버트 매캐디 글로벌 채권 전략 수석의 경고다.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한번 시작되면 급격한 자본유출로 금융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초저금리 기조 등에 힘입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캐리 트레이드가 또 다른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속출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국가에서 돈을 빌린 뒤 고금리 국가의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얻는 기법을 말한다.
◇"선진국 저금리에 만족 못한다"=현재 글로벌 자금은 빠른 속도로 남유럽·신흥시장 등 위험자산에 몰리고 있다. 올 들어 미국·호주 등의 국채수익률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선진국 국채지수는 지난 28일(현지시간) 현재 1.28%로 2013년 5월 이후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10년물 국채수익률은 29일 2.46%로 마감하며 지난해 6월 이후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호주와 일본의 10년물 수익률도 각각 11개월, 1년 만에 가장 낮았다.
선진국 국채가격이 오르자 투자가들은 달러 등을 빌려 위험자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실제 그리스·아일랜드·이탈리아·포르투갈·스페인 등 과거 재정위기를 겪었던 유럽 국가들의 10년물 평균 국채수익률은 28일 2.13%로 떨어지며 유로 출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캔터피츠제럴드의 저스틴 레더러 금리 전략가는 "2년 전 유럽의 모든 것이 붕괴됐던 점을 감안하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물 수익률이 3% 밑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금은 3월 이후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 등 이른바 '취약 5개국'으로도 쏠리고 있다. 터키 10년물 국채금리는 28일 8.9%로 3월보다 2%포인트 급락했고 브라질도 같은 기간 13.4%에서 12.3%로 하락했다. 이처럼 캐리 트레이드가 봇물을 이룬 것은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장기간의 초저금리 기조를 시사한 가운데 통화·채권·주식 등의 변동성이 2007년 6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투자가 입장에서는 별다른 위험 없이 금리차익을 따먹을 수 있는 셈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의 마이클 하트넷 수석 투자 전략가는 "금리의 일본화(장기 제로금리)와 시장 변동성 종말의 여파로 투자가들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캐리 트레이드가 상당 기간 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청산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을 것"=문제는 캐리 트레이드가 가속화할수록 청산 때의 파괴력도 더 커진다는 점이다. 지금도 위험자산 투자가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리안츠번슈타인의 여신 책임자 아시시 사흐는 "아직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6∼2007년 수준이 아니지만 (거품 붕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연준 등의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면 금융시장의 불안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UBS의 바하누 바웨자 신흥시장 애널리스트는 "미 금리는 오르는데 글로벌 경기전망까지 악화되면 터키 등 취약국은 물론 신흥국 전반의 통화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고위험 파생상품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으로도 쏠리고 있다. 모뉴먼증권의 마크 오트월드는 "캐리 트레이드 수요는 수익률 외에 시장 안정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변동성이 커질 때 투자가들은 경쟁적으로 고위험 상품을 싸게 내던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로 먼저 살겠다며 '출구'로 몰리면서 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고는 선진국 중앙은행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유럽 금융시장의 최대 위험요인은 자본의 변덕스러운 유출입"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자금이 상대적으로 싼 유럽 자산을 사들이고 있지만 연준의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바뀌고 신흥국 경제가 개선되면 자금이 급격하고 무질서하게 나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찰스 빈 영국 중앙은행(BOE) 부총재도 "투자가들이 시장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전의 섬뜩한 분위기가 연상된다"고 경고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안드레아스 돔브레트 집행이사도 "시장에 새 위험요소가 보이는데도 투자가들이 리스크 헤징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