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Culture&Life] 한국화가 김호득

"마음 가는대로 그냥, 문득… 그것이 내작품의 화두"



레슨 한번 안받고 서울대 입학… "비전 찾아보자" 동양화 발디뎌
종이 살 돈 없어 광목에 그림… 오히려 '가난이 준 선물'로
동양화가 전통기법 유지하되 서양화의 현대적 감각 살려야
수묵화, 붓질의 생동감 살아있는 한 디지털시대도 함께 할것


한국화의 호방한 멋을 이야기하며 '일필휘지로 휘갈긴 힘찬 붓질'을 운운하고는 한다. 이런 필치가 쉬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아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에서나 가능하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화가 김호득(64·사진)의 대규모 개인전이 그렇다. 젊은 여자의 허벅지 굵기만 한 검은 먹선이 힘차게 화폭을 가른다. 기교 따위는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나 그릴 그림은 아니었다. 그는 엄연히 '한국화가'지만 지필묵, 즉 화선지와 붓과 먹으로 대표되는 한국화의 전통 재료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림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전시장 2층의 설치작 '그냥 문득'은 대형 수조에 먹물을 채우고 사각의 한지 기둥을 세운 작품이다. 바라보는 관람객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새까만 먹물의 양(量)은 작가가 오늘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보낸 각고의 시간에 비례한다고 했다. 한국화의 고루하고 진부한 이미지를 깨고 파격적 현대미술로 승화시키는 작가, 김호득 영남대 교수를 만났다.


왜 이렇게 그리느냐고 물었더니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개인전 전시 제목도 '그냥, 문득'이다. 사실 '그냥' '문득' 같은 무심한 어감의 단어는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잡담이 아니고서는 아무 데서나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도 공식적인 전시제목으로는 더욱 그렇다.

"내 그림의 전체적인 화두가 '그냥'인 것 같아요. 모든 것들이 '그냥'이지만 그저 그냥이 아닌 것이고 쉬운 듯하지만 많은 것을 함축한 단어입니다. 그런 '그냥'이 무책임하거나 무의미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이 단어는 '있는 그대로' '마음 흐르는 대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흐르는 대로, 가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내 작품의 정수(essence)이고 나의 화두이며 나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회고전 성격을 갖는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내 작업을 관통하는 '그냥, 문득'을 쓴 것입니다."

깡마른 외모지만 누가 봐도 다부진, 그는 타고난 예술가다. 철들기 전부터 만화를 곧잘 따라 그리던 그는 중학교 때 미술반에 발을 디뎠고 실기 교습 한 번 받은 적 없었지만 서울예고에 입학했다. 서울대 회화과에 들어갈 때도 레슨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서양화를 주로 했던 그가 대학 진학 후 선택한 전공은 '동양화'였다. "동양화 하려는 학생이 너무 적으니까 선생님들이 꼬드기셨던 거지"라고 허허 웃지만 실은 고민이 많았다.

"내가 한참 서양화에 빠져 있던 시절, 미니멀리즘 미술이 크게 퍼져 있었어요. 장식과 기교를 최소화해 색과 면 자체로만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발전 단계의 끝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잘 안 보이더라고요. 게다가 서양화는 유학을 다녀오는 게 원칙 같던 시절이라 그 부분도 발목을 잡고…그래서 내 나라 내 땅에서 한국화의 새 비전을 스스로 찾아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림을 좀 그려보니까 내가 색채 감각은 좀 떨어질지 모르나 형태 감각이나 선묘 쪽은 뒤지지 않기에 유리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김호득은 먹·여백·농담이라는 전통 수묵화의 주요 골격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조리 뒤흔들었다. 그는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대학생 시절 '종이 살 돈도, 표구할 돈도 없어서' 서양화과 여학생들이 쓰고 버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고 동대문시장에서 싸구려 광목을 사와 아교칠한 후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응용하기에 이르렀다. 김호득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광목에 그린 수묵'은 가난이 준 선물이었다.

한국화를 시작한 초기에는 그도 전통적 화풍의 실경(實景)을 그렸지만 이후 진경(眞景)으로, 그러고는 추상으로 변화했다. 실경은 눈앞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생화에 해당한다면 진경은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심상을 가미해 풍경을 재해석한 사의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은 일련의 묘사 과정을 넘어 형태를 아예 없앤 상태로 본질을 보여주려는 방식이다.

"남들처럼 자연을 그리려 했는데 시간이 좀 흐르다 보니 문득 내가 남들과 다른 그림을 하고 있더군요. 내가 왼손잡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아챈 나의 특성이었던 것처럼 내 안의 근성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찾고 내 방식을 추구하는 거더라고요. 하지만 내 그림이 우리 전통화를 부정(不定)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양화는 서양 입장에서 보면 추상에 가까운, 사의성이 훨씬 강한 자연의 그림이니까요.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이 그린 풍경화가 자연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듯 말이죠. 진경은 마음의 경치를 그린 겁니다."

그의 작품 '폭포'는 양쪽에서 물이 모여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의 형상을 단 두 획으로 보여준다. 간략한 붓질일 뿐이나 누가 봐도 폭포다. 또 폭포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장면은 먹물이 튄 것 같은 몇 개의 점으로 표현했다. 그것 역시 폭포다. 하지만 그가 일필휘지로 쉽게 그린 것 같은 작품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염없이 찍은 점, 끝없이 반복한 선 긋기로 이뤄진 '노고 가득한' 작품도 함께 보여준다.

"한 번에 그을 획을 시간을 늘리고 공간을 펼치면 이렇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점으로 나눠 찍거나 짧은 선으로 나눠 긋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숨 쉬듯 점을 찍고 구름이 날리듯 선을 긋고 물이 흐르듯 선을 연결하노라면 이것들이 촘촘해지면서 마음의 결로 바뀌더라고요. 그저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노라면 하루 12시간을 앉은 채로 작업만 하고는 해요."

그의 대답 곳곳에서 예술가와 철학자가 맞닿아 있다고 하는 까닭을 알 법하다. 한편 김 교수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 동양화 혹은 서양화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결코 이뤄낼 수 없음을 강조했다.

"내가 기성 동양화가들에게 실망한 것이 전통 기법을 전수받을 뿐 서양화 기술은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점인데 사실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을 모두 알아야 합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化)를 보면 나뭇가지에서 시작해 기하학적으로 다듬는 과정이 있고요, 세잔도 과일 정물이나 산 풍경을 그리면서 그 자연을 원·삼각형·사각형 등 간략한 형태로 분석했던 점도 우리가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양화의 추상성과 서양화의 추상화가 어디서 달라지고 어디서 다시 만나는지 알아야만 자신만의 새로운 미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그림 한국화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게다가 최첨단 디지털 시대의 현대인이 보기에 수묵화는 아날로그의 저 끝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하다.

"붓질의 미래는 그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지든지 아니면 희소성으로 재평가되든지 극단적일 거라 봅니다. 이를테면 회화, 즉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있었고 제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안 없어질 겁니다. 디지털이 너무 앞서 가니 오히려 아날로그로 역행하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니까요. 수묵화의 흑백 그림이 '블랙 앤드 화이트'를 추구하는 미니멀한 트렌드와 잘 어울리는가 하면 현대적 공간에 큼지막한 수묵화를 걸어두면 심플함의 조화가 의외로 보기 좋습니다. 붓의 기운생동이 기계화된 시대와 상충하는 게 아니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He is…

△1950년 대구

△1970년 서울예고 졸업

△1975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


△1985년 서울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관련기사



△1986년 관훈미술관 개인전

△1990년 공간미술관 개인전

△1993년 제4회 김수근문화상 미술상

△1995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문인화와 동양정신'

△1995년 제2회 토탈미술상

△2002년 일민미술관 개인전

△2004년 제15회 이중섭미술상

△2008년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2008년 제22회 금복문화상 미술 부문

△2013년 금호미술관 개인전

△현재 영남대 조형대학 미술학부 동양화과 교수


죽을 고비 넘기며 화풍 변화… "퇴임 후 해외서 승부 걸어보겠다"

후배·제자에 부담주는 은퇴기념전 안해
전업작가로 작품에 매달리는 새삶 기대


김호득 교수는 1998년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독하게' 끊었다. 젊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끼니를 거르며 사나흘씩 술에 절어 살던 시절이 있었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비롯해 간경화와 폐렴으로도 병원 신세를 진 후였다. 좋아하던 술 담배도 잃은 마당에 2009년에는 식도암 수술을 받았다. 그 와중에 위태로운 몸을 병석에 누이고서도 그림을 멈추지 못한 것을 보면 그는 천생 화가다.

"아내에게 파스텔지와 콩테를 좀 갖다달라고 했어요. 간단한 재료로는 그려도 된다고 의사 허락도 받았고요. 드러누운 환자와 주사를 갖고 드나드는 간호사를 그리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더군요. 그러면서 내 자화상도 그려봤고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오히려 더 맑아진 정신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변화'를 택했고 과감하게 변신한 작품은 평단의 호응을 받았다.

수술 후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그는 내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새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후배와 제자들에게 부담 주는 것이 싫어 2년에 한 번꼴로 여는 개인전을 올해 치르고 내년에는 정년퇴임을 명분으로 한 전시를 절대 열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미술대학 교수들이 후배와 제자들이 챙겨주는(?) 은퇴기념전을 못 이긴 채 받아주는 것은 공공연한 관례다.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내년에 국내에서는 개인전 안 할 겁니다. 그렇다고 쉰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작가는 쉬면 곧 죽음입니다. 감각을 잃고 맥이 끊기면 다음 작업으로 진행이 안되거든요. 사실 나는 은퇴 후 활동이 기대됩니다. 전업작가로 작품에만 매달릴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열릴 테니까요. 작가로 또 한 번 삶을 사는 거죠.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 제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제법 있어 자주 연락이 오는데 해외에서 승부를 한번 걸어볼 셈입니다."



사진=이호재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