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한국畵의 발전을 기대하며

미술계의 호황을 맞아 하루에도 수없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또한 미술을 감상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대중화된 미술을 쉽게 이해하고 좀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 한다. 미술도 시대가 변한 만큼 요즘은 한국화ㆍ서양화를 구분 짓기 힘들다. 서로 재료와 기법이 자유자재로 접목돼 사실상 ‘회화’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화의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서로 영향을 받고 변화한다 해도 한국화만의 특성은 지켜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화의 발상지로서 전통을 고수해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미술을 감상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한국화와 서양화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미술을 감상하는 분들의 대다수는 미술 전공자이기보다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미술에 조예가 있지 않는 한 쉽게 구분하기 힘든 장르의 작품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갤러리를 찾는 분들의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가 한국화ㆍ서양화의 구분이다. 한국화의 존재가 그만큼 희미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되짚어보면 일제 강점기에 한국화 전통 화단은 외세에 침탈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해방 이후 화풍뿐만 아니라 동양화에서 한국화라는 명칭을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들게 되찾은 한국화는 여러 번의 과도기를 걸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한 역사들이 무색할 만큼 이제는 ‘세계 속의 한국화’라는 호평이 나오며 국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한국화에 쓰이는 재료인 한지와 먹, 그리고 한국적 소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지에 스며든 염료, 그리고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빛깔을 보고 있노라면 신비감마저 느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요즘 한국화의 깊이 있고 진득함이 있는 작품을 감상하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고 한다. 가벼움이 넘치고 즉흥적이고 쉬운 방법만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하는 미술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발상지로서 자부심을 갖고 현대미술의 흐름을 적절히 받아들인다면 발전하는 한국화가 될 것이다. 또한 대중들에게도 한국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갤러리영에서도 ‘한국화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성실함과 투철한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추구하는 한국화 중견 작가들을 모시고 한국화의 현재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미술계의 전성기에 국내외의 미술시장에 우뚝 선 한국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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