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문화의 달이 끝나가는 요즈음 문화체육부 청사에 걸려 있는 「문화가 미래를 창조합니다」라는 주제어를 볼 때마다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곤 한다.올해로 스물다섯번째를 보내는 문화의 달과 문화의날. 이를 정부에서 기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내가 문화분야의 공직에 몸담기 시작한 시기인 70년대 초반부터이다. 상달인 10월을 맞아 여기 저기서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개최됐지만 지난 사반세기를 돌이켜 보고 오늘의 문화현실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 한 구석에 부족함을 갖게 되는 것이 문화의 달을 맞아 느끼는 솔직한 심경이다.
왜 그럴까? 만족스럽지 못한 문화현실 때문이리라. 60·70년대의 개발로 이제는 식생활, 주거생활, 의생활 모든 것을 어느 정도 갖출만한 시대가 되었지만 날로 이그러져가는 사회현상을 체험하면서 사람들 마음의 공허함은 더 커져가는 것만 같다.
지난주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는 길에 조그마한 목불인견의 체험을 한 일이 있다. 물론 이것 뿐이 아니지만,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어느 중년의 신사,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것까지는 좋았는데 버스안에 타자 마자 양말을 벗은채 맨발로 시원함을 만끽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21세기 선진문화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많은 국제행사도 눈앞에 두고 있다.
목불인견은 버스안이 이 모습뿐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펼쳐져 있는 반문화적 비시민적 현상의 창궐이다. 무분별한 외래문화의 범람, 윤리의 타락, 전통과 현대의 정리되는 않은 혼재. 이같은 병리를 치유하는 것은 문화인식의 고양을 통한 시민의식의 함양이다. 문화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문화기관 예술단체, 청소년 및 윤리기관들이 문화운동을 확산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문화에 대한 인식을 가꾸어 시민의식을 높여야 할 것이다.
21세기 그 나라의 경쟁력은 문화력으로 결정된다는 예언은 차치하고라도 시민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문화가 앞장서야 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문화복지국가, 문화복지 사회의 건설을 통해서만 우리가 지향하는 문화발전과 문화복지사회를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재정적, 법적, 제도족 지원이 필요하지만 각 지방자치단체들 스스로 주민들의 문화생활터전이 되는 공연장, 전시장 등 문화인프라의 확충이 선결요건이다. 이 점에서 한가지 우리에게 고무적인 일은 최근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각 지역별, 동네별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이 아래로 부터의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가 싹틀 때 일찍이 백범 김구선생께서 반세기전에 한없이 가지고 싶어한, 「부력」도 「강력」도 아닌, 높은 「문화의 힘」을 갖는 그런 세상을 이룰 수 있으리라.
영국의 존 듀이는 『야만인이 야만인이며, 문명인이 문명인인 것은 그의 태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여하고 있는 문화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한바, 우리가 일으켜야 할 문화 운동 의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