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부품·소재 원천기술 확보하자

누구든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본다면 8만장이 넘는 평판에 섬세하게 새기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되도록 만들어 놓은 옛 장인들의 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00년이 넘도록 판이 뒤틀리거나 해충의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목재를 고르고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서 충분히 건조한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소재와 기술은 세월을 뛰어넘어 그 가치를 갖는다. 오늘날 원천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기업들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것에는 나라별로 옛 장인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글로벌 전쟁터라 불리는 세계시장을 상대로 최근 우리나라가 수출 3,000억달러의 위업을 달성한 것은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 1위와 반도체 3위, 자동차ㆍ철강 5위 등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주력기간산업의 선전에 힘입어 가능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면 안된다. 세계에서 11번째로 달성한 쾌거 뒤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최근 부품ㆍ소재 무역수지 흑자 폭과 외국인 투자 유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부품ㆍ소재 대일무역 적자 규모도 올해 처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반도체ㆍLCD 장비 등은 핵심 부품ㆍ소재의 조달을 여전히 외국에 의존하고 있고, 신소재ㆍ원천소재 분야는 아직까지 선진국에 뒤쳐져 있는 것이 엄밀한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부품ㆍ소재산업의 발전은 대일 의존도 개선의 핵심 키워드이며 부가가치ㆍ일자리 창출과 대ㆍ중소기업 상생 협력의 기반이다. 또 지역 특화 클러스터를 통해 국가 균형 발전에도 기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품ㆍ소재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부품ㆍ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난 2001년 ‘부품ㆍ소재특별법’ 제정 이후 기업단계별맞춤형정책을 펴고 있다. 중소 부품ㆍ소재기업은 기술 지원과 정보 제공 등을 통해 혁신형 중소기업으로 끌어올리고 중핵기업 후보군은 인수합병(M&A) 지원과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중핵기업으로, 중핵기업과 수요대기업은 원천기술 개발과 브랜드 홍보 강화대책을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과 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소재 원천기술에 대한 특화된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11월 금속소재정보은행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향후 10년간 총 8,500억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 50대 핵심소재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이다. 물론 부품과 완제품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기초소재는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할 경우 높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지만 장기간의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는 반면 성공 가능성은 낮아 기업은 장기투자를 주저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장기계획을 갖고 소재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할 것이다. 특히 협상 진행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쾌속정 ‘부품ㆍ소재호’에 신형 터보 엔진을 달아주는 격이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철저히 준비하고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를 충분히 활용한다면 수입 대체를 통한 대일본 의존도가 완화돼 건실한 무역구조를 달성하는 동시에 기술력 있는 부품ㆍ소재기업들이 탄생해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 보다 원활하게 진출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글로벌기업들에 품질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부품ㆍ소재 공급망에 편입된다면 부품ㆍ소재의 글로벌 공급기지화의 목표를 보다 앞당겨 달성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부품ㆍ소재산업의 자립 기반이 없는 세계 1등은 그 의미가 반감된다. 때문에 팔만대장경의 경우처럼 옛 선조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부품ㆍ소재 원천기술을 확보, 현실화시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부품소재산업이 오랜 기간 지속적인 정책 추진과 기업ㆍ학계에서 땀 흘린 결과 희망의 싹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합심해 이 희망의 싹을 거목으로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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