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경 네트워크] "창원·마산·진해는 이제 하나, 통합기념탑 세워 화합 계기로"

박동백 창원문화원 원장<br>일제시대때 한 지역서 분리… 역사적 통합 의미 되새겨야<br>'한 고을' 동질성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상생발전 필요


"창원과 마산, 진해가 한 도시가 됐으니 이를 기념하기 위해 통합 기념탑을 세워 시민의 화합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박동백(77ㆍ사진) 창원문화원 원장은 통합 창원시의 화합을 위해 기념탑 건립을 제안했다. 박 원장은 "마침내 창원과 마산, 진해시가 역사적으로 한 도시가 됐다"며 "한국 역사상 3개시는 분리와 통합을 거듭했기 때문에 다른 시군 통합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3개 시 통합에 대해 "이질적 문화요소가 있다면 시민 간 융합이 더디고 때로는 분쟁도 발생할 수 있지만 창원과 마산, 진해의 통합은 과거 한 고을로서 동질성이 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즉 같은 시민으로서 지역민이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굳어져버린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3개시의 역사성을 살펴보면 창원과 마산, 진해는 지명의 같아졌다가 달라지고 행정구역도 이합을 반복해왔다. 삼한시대로부터 2,000여년을 같이 한 동향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박원장의 주장이다. 삼한시대 합포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골포국은 남해안 일대 포상팔국의 맹주국이었고 당시 영역이 창원과 마산, 진해 지역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신라 35대 경덕왕 때 골포의 골(骨)자가 상서롭지 못하다해 합포(合浦)로 개칭, 현재까지도 그 명칭을 쓰고 있다. 신라 경덕왕 16년에는 행정개편을 해 굴자군이 의안군이 되고 소속된 현이 합포현(현 마산), 웅신현(현 진해), 칠제현(현 칠원) 등으로 현재 군 밑에 면이 있는 것과 같은 형태라고 박 원장은 설명한다. 한때 김해에 속했던 적도 있었으며 고려 충렬왕 때는 일본 정벌의 공을 인정받아 마산지역의 합포현이 회원현으로, 창원지역 의안군이 의창군으로 승격됐다. 1408년 조선조 태종 8년에 회원현과 의창군을 합쳐 창원부가 되니 이때도 이합을 한 셈이다. 1896년에 다시 한 번 개편돼 창원은 경상남도 창원군이 됐다. 1903년에는 다시 창원군으로 개편되고 1913년 내서면 일부를 마산부에 편입시켰으며 1914년에는 내서면, 창원면, 구산면 일부를 다시 마산부에 편입시켰다. 창원군은 일제강점기 때 진전, 진동, 구산, 내서, 부내, 대산, 웅읍, 웅동, 천가, 진해면 등 15개 면 등으로 재개편 됐다. 이때부터 마산부는 창원에서 독립하게 되고 진해는 1917년 10월 창원군 진해면이 됐으며 1931년에는 진해읍으로 승격됐다. 박 원장은 "이와 같이 창원이 3개시로 구분된 역사적 배경을 볼 때 일제에 의해 100여년 전 한 지역에서 3개 지역으로 분리됐다가 이제 다시 하나로 복원됐다"며 "다시 하나로 복원된 만큼 그 역사적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우리 고장의 미래를 설계해 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오늘날 유럽이 통합되는 등 세계가 통합의 시대를 맞이했고 도ㆍ농 간에도 통합돼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있다"며 "한국 행정개편에도 통합의 바람이 일고 있으며 그 첫 선을 보인 곳이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시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통합 창원시는 이제 미래의 부푼 꿈을 갖게 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3개시 통합의 기념탑을 세워 동질성 회복과 3개 시민의 화합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미래지향적인 통합 공동체로서 상생발전의 꿈을 담은 탑을 건립함으로써 통합창원시의 영원한 기념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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