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저녁 퇴근길 전철안에서 불청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그는 『기획예산처 공보관』이라며 『「총선, 경제관료가 뛴다」라는 정치면 톱박스 기사(본보 9일자 6면 참조)중 「진념(陳稔)장관은 고향을 희망하고 있으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호남공천을 고려하지않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K모 공보관(중앙부처 국장)은 삭제 이유로 『평소 陳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날 경우 정치권에 뛰어들지않고 학계에 진출해 후진을 양성하겠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혀왔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나는 『陳장관은 자천타천으로 내년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며 『陳장관 처럼 「유능한」분은 호남지역 대신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다』고 응답했다.
그러자 공보관은 이어 『陳장관의 경우 장관까지 시켜준 金대통령이 구태여 이번 총선때 공천하면 몰라도 스스로 정계에 진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후 2~3시간동안 10회정도 전화통화를 통해 「기사 삭제」 또는 「수정」을 요구하면서 전반부에는 간곡한 부탁을 하다가 막판에는 협박조로 『확실한 물증이 있느냐』며 『만약 기사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陳장관이 직접 강하게 어필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당황했다.
공보관과 공보관실 직원이 교대로 워낙 끈질기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한 때 수정할까도 생각하면서 여러 차례 해당 문장을 읽어 보았다. 나는 또 『陳장관이 직접 전화를 하면 그대로 수정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陳장관의 전화도 없었을 뿐아니라 오보를 하거나 陳장관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내용이 아닌 것 같아 지방판(처음) 기사를 수정없이 그대로 시내판(마지막)까지 내보냈다.
하지만 그날 밤 무척 괴로웠다.
나라 장래를 좌우할 만한 주요정책에 관한 내용도 아닌 기사로 언론인과 공보관이 시달려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陳장관의 본심은 공보관의 말처럼 미래가 불투명한 정계 진출보다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학계로 나가는 것을 희망한다고 믿고싶다.
나도 개인적으로 陳장관 같은 훌륭한 경제관료가 국회에 진출하는 것보다 학계로 나가 후진을 양성하거나 경제연구소를 만들어 나라경제를 설계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장관도 하고 「공천=당선」이 될 수 있는 특정지역 국회의원을 바라는 것은 온당한 처신이 아니다. 정말 금배지를 달고싶으면 서울이나 수도권지역에 나와 유권자들로부터 정정당당하게 심판을 받아야 한다.
중앙부처 공보관도 기관장 개인에 충성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국가정책 홍보와 정부조직에 충성하는 자세로 일할 때 국익에 도움이 되며 국민들로부터 따뜻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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