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빨간 깃발법' 의 교훈

어떤 결정이든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영향과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영향이 다르다. 누구나 장기적 효과를 노리지만 어떤 사안을 길게 보고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원숭이만이 아니라 인간도 같은 일곱개의 바나나라면 아침에 3개를 받고 저녁에 4개를 받기보다는 아침에 4개를 받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미래는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득이 되지만 길게 보면 제 발등을 찍는 일이 생기는 것은 이런 짧은 생각 때문이다. 요즘 공장에서는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은 일을 한다. 로봇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자동화된 기계장치다. 한때 미국의 자동차 노동자들은 로봇이 공장에 도입될 경우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로봇 도입을 강력히 반대했다고 한다. 그렇게 당장은 일자리를 지켰으나 요즘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19세기 중반 자동차산업이 가장 앞선 곳은 영국이었다. 그러나 1865년 제정된 ‘빨간 깃발법’은 영국 자동차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아버렸다. 모든 증기자동차를 세 사람이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뼈대다. 한 사람은 운전을 하고 두 번째 사람은 보일러에 석탄과 물을 집어넣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자동차 앞에서 빨간 깃발을 들고 뛰거나 말을 타고 달려 사람들이 비켜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없도록 만든 이 법은 31년간이나 존속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가솔린 자동차를 개발할 때 영국은 뒤처져가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한번 익힌 기술이 평생 쓰일 수 있는 시대는 끝나버렸다. 기업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끝없이 진화한다. 급변하는 기술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노동자든 기업이든 도태할 수밖에 없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낙오자에게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갱생의 기회를 주는 쪽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혹시나 이런 추세 속에서 변화에 역행하는 ‘빨간 깃발법’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살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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