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홍현종의 경제 프리즘] 적자 생존의 시대


뚝심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래리 엘리슨 미 오라클사 회장. 그의 거듭되는 적대적 M&A 공세에 피플 소프트측 최후 방책은 ‘포이즌 필’(Poison Pill)이었다. 기업 가치를 고의적으로 추락시키는 말 그대로 극약 처방이다. 그러나 그 카드도 엘리슨의 밀어붙이기에 무너지며 피플 소프트는 마침내 무릎 꿇었다. 지난해 말 일이다. 버티는 피플 소프트측 주주를 회유하기 위해 오라클은 인수주가를 무려 다섯번이나 올렸다. 양자간 상처 투성이의 18개월 전쟁 중에 재미를 본 건 시장 점유율을 높인 경쟁업체 독일의 SAP이다. 극약처방까지 써가며 죽기 살기로 싸운 최근 오라클-피플소프트사간 적대적 M&A 공방은 우리 시대 기업 환경이 어떤 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전자가 외국자본의 의해 적대적 M&A가 되면 한국엔 고철더미만 남는다는 삼성전자 보고서가 발표된 게 지난해다. 최근엔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을 되팔아 세금한푼 안내고 1조2,000억원을 챙겼다. 국제 자본이 우리 안방에서 부리는 기막힌 마술 같은 상술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우리 국민들의 심상은 위기감을 넘어 허탈 지경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반응은 대충 두 부류다. 외국 자본의 공격을 자본주의 속성으로 보는 ‘냉정파’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그게 글로벌 자본의 생리’라는 것, 어차피 자본이란 국적불문하고 이윤을 쫓아 움직이고 거기에 들이대는 도덕적 해이론이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문을 죄다 열어 준 상태로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자체가 글로벌 마켓의 생리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란 주장이다. 그러나 주주인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편법으로 국부를 유출해가는 일부 외국 자본의 행태를 합법이란 틀 속에서 그저 그렇거니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외국자본 비판론자들의 외침도 결코 그를 수 없다. 더구나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운 현실, 특히 구멍이 숭숭 뚫린 우리 시장 보호 정책의 상황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나름 대로의 타당성을 갖춘 이 같은 논쟁을 확대해보면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거대 담론과도 일맥 상통한다. 문제의 뿌리가 지금 지구촌 경제의 지배 논리인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IMF 당시 자본시장 자유화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입장에서 지금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과 재산을 어떡하든 행동으로서 지켜내야 한다는 점이다. 외환 위기란 특수 상황에서 우리가 필요해 불러들인 자본이 ‘트로이 목마’가 되지 않도록 구체적 정책으로 자국 기업 방어에 나서는 게 시급하다. 이미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해말 현재 시가 총액기준 40%대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아시아 1위다. 외국계 자본은 외환이후 이후 단기 차익 챙기기에서 이른바 ‘수평 M&A’ 국면에 들어섰다. 금융에 이어 산업자본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음이다. 특히 외환위기로 부실화 된 뒤 천신만고끝에 클린 컴패니로 거듭난 우량 기업들이 집중 타깃이다. ‘한국은 외국자본의 즐거운 놀이터’라는 지난해말 파이낸셜타임스의 비아냥은 우리의 외국 자본 관리에 허점이 있음을 일러주는 밖으로부터의 지적이다. 토종 사모펀드를 키워 외국자본의 공격에 맞대응하는 전략은 물론이고 황금주(Golden Shares) 제도와 차등의결권(Dual Class Share), 필요하다면 포이즌 필까지도 도입, 정책을 통해 외국자본의 공세를 막아내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상황에 외국계 펀드들이 돈을 바다 건너 퍼 나르고 있다는 뉴스를 국민들이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 적자 생존의 시대, 민간에게 사안을 보는 냉정함만을 강조하기 전에 정부가 서둘러 방비책을 마련하는 게 당연한 순서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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