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황해가 다시 살아난다

지난 1월1일 아내와 어머니를 모시고 서해 바다를 찾았다. 충남 대천 인근의 작은 포구에서 열리는 굴 축제 소식을 듣고 모처럼 식구들과 굴 구이도 먹고 바다구경도 하자는 취지였다. 안개비가 오는 질척거리는 포구에서 적지 않게 모인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해신’이 떠올랐다. 해신 장보고가 활동하던 9세기 무렵, 황해는 세계로 나가는 지름길이자 실크로드였다. 장보고는 서남해를 평정한 뒤 저 멀리 중동까지 위세를 떨쳤다. 이 바다를 시작으로 장보고가 중국 대륙까지 진출했다는 생각을 하다가 또 다른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조선 말기 세계 열강들이 문호개방을 요구하며 들이닥친 길도 바로 이 바다였다. 세계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역시 이곳 황해였던 셈이다. 좁고 탁한 바다지만 이곳을 통하지 않고는 세계와 소통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해운항만 분야에 종사하기 시작한 70년대 후반, 황해는 온전한 바다가 아니었다. 바다 건너편의 넘어지면 코 닿을 듯했던 중국 대륙은 이미 오랜 기간 문을 닫고 세계 경제와 교류를 끊고 있었다. 한반도가 반으로 갈리면서 바닷길마저 반쪽으로 나뉘어져버렸다. 그 뒤로 황해는 무려 50여년의 세월 동안 외부와의 소통경로가 막혀버린 바다 아닌 바다였던 셈이다. 반세기 동안 이 바다가 우리에게 아무 역할도 해주지 못했던 탓에 ‘황해는 막다른 골목 같은 바다’라는 고정관념이 우리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그러나 장보고 이후 1,200년이 지난 오늘날 서해안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21세기를 전환점으로 동북아 지역으로 확실하게 옮겨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닫혀졌던 빗장을 풀고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거듭하며 지구촌 경제를 떠받드는 대들보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앞에 놓인 황해는 중국과 한반도, 동북아와 세계를 한달음에 연결시켜주는 해상 수송로로 기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곧 통일 시대가 열리면 남북으로 닫혔던 물길도 더 활짝 열릴 것으로 보인다. 황해는 대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동북아 경제의 한가운데에 놓인 사통팔달로이자 관문이 되는 셈이다.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안개비 속에서 뿌옇게 펼쳐진 황해의 한 귀퉁이를 보면서 해상 수송로를 생각했던 내 직업의식이 쑥스러워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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