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한 영업담당자는 최근 나온 ‘7월 판매동향’ 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주요 가전제품의 매출이 일제히 두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다.
내부 통계에 따르면 30인치 이상 대형 TV는 전년동기와 비교해 20% 증가했고 특히 PDP는 45%나 늘었다. 양문형 냉장고도 30%나 증가했고 청소기조차 20% 늘어났다. 흐름은 8월에도 이어져 품목별로 10% 가량씩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선풍기 사러 왔다가 얼떨결에 디지털TV를 사는 것 같다”는 농담조의 발언을 꺼내면서도 “지난 4~6월 내내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소비가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소비회복론이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물경기에서 발견되는 이 같은 동향은 지표상으로도 슬며시 엿보이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6일 브리핑에서 “소비가 6월 말에 와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7월에는 좀더 개선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이 부총리가 ‘자신감’을 드러낸 배경은 최근 몇몇 지표에서도 발견된다. 산업자원부가 최근 내놓은 7월 대형 유통업체의 매출동향을 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은 여름상품 판매증가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6% 증가해 6월의 0.7%에 이어 2개월째 증가세를 보였다. ‘소비의 선도지표’라는 명품 판매는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통계청이 내놓은 6월 서비스업생산지수에서도 묻어났다. 6월 서비스업생산지수는 전년동월 대비 0.5% 증가로 소폭이나마 증가세로 돌아섰고 이중 소매업은 17개월째 감소했지만 감소세는 1년6개월 만에 가장 적은 -0.3%에 불과했다. 인터넷상에서 거래되는 ‘사이버쇼핑’ 거래액도 6월 6,201억원으로 5월보다 1.9% 증가했다.
붉게 물들었던 금융권의 부실신호도 차츰 파란색으로 변하는 조짐이다. 6월 말 현재 은행 신용카드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8.5%로 전월 말의 10.3%에 비해 1.8%포인트 줄어들었다. 은행의 가계대출(신용카드채권 제외) 연체율도 6월 말 현재 2.0%로 전월 말의 2.4%보다 0.4%포인트 떨어졌다.
물론 지표상으로 드러난 이 같은 수치들을 놓고 소비가 회복국면으로 ‘U턴’했다고 단정짓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아직까지는 대세다. 부동산경기가 최악인데다 소비자들의 경기 체감도는 한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 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기 체감도를 보여주는 소비자평가지수는 66.2로 전월에 비해 1.1포인트 떨어졌고 6개월 이후 경기에 대한 기대치인 소비자기대지수도 89.6으로 전달보다 2.6포인트 내려앉았다.
하지만 비관론자들도 바닥에서는 빠져나오고 있다는 관측에 조심스럽게 동의하는 분위기다. 모건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 앤디 시에는 “한국의 소비가 바닥을 쳤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회복력은 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연구원도 최근 내놓은 ‘소비침체, 일시적인가 아니면 추세적인가’라는 보고서에서 “2002년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이 현저히 둔화하고 있고 올들어서는 판매신용 감소도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고 있어 소비가 추가로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유가, 경기회복 지연 등 소비회복에 부정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가계 채무조정에 대한 성과가 가시화하면서 적어도 소비가 더이상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횡보 내지는 소폭 상승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