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꽃파는 처녀」­헤어짐과 만남/양평 편집위원(데스크 칼럼)

「꽃파는 처녀」는 작품속에서 망명을 한다.꽃이나 파는 처녀의 망명이라니황당하지만 말그대로 목숨을 건지려 도망치는 것이다.주인공 꽃분이네는 일제의 앞잡이 「배가」에게 토지를 강탈당하고 오빠 철용이는 노예노릇을 한다.철용이가 도망치자 배주사는 꽃분이를 강제로 부리다 술집에 팔아넘기려 광속에 가둔다. 꽃분이가 팔려가기 전날밤 「조선혁명군」 지하당원이 되어 돌아온 철용이는 배가와 일본순사를 죽이고 동생을 구해 어느 항구로 떠난다. 그 꽃분이가 작품밖에서 망명을 했다.북한 만수대예술단의 가무극 「꽃파는 처녀」에서 꽃분이역을 맡았던 최해옥이 남편 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와 함께 고향이 아닌 고국에서 몸을 피한 것이다.꽃분이가 고향을 떠난 것으로 작품이 사실상 끝나듯 이제 작품밖의 「꽃파는 처녀」시대,다시말해 북에서는 꽃분이에게 김일성의 항일전적을 팔게 하고 남에서는 꽃분이를 여우꼬리를 감춘 요귀처럼 무서워하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대중들에게 낯설기만 했던 꽃분이가 갑자기 우리 곁으로 다가온 느낌이나 그는 원래 우리의 이웃 처녀다.우연인지 필연인지 「꽃분이」의 원형은 일제와 더불어 건너온 신파극에서 태어났다.그후 악극단을 거치는 동안 이름도 신분도 가지각색이었으나 신파극주인공다운 「청순가련형」의 얼굴은 그대로였다.꽃분이는 여기에 붉은 옷을 입힌 것일 뿐이다. 박로식이 악극단시절인 50년대에 악역으로 출연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지주에 광산업자인 그는 소작인의 아내를 탐내 남자를 광산에 보낸다.남자는 위장사고로 불구를 만들고 여자는 농락하고 버리는 수순을 거친 그는 뒷날 소작인의 딸에게도 마수를 뻗쳐 성공하기 직전 어머니의 칼에 죽는다. 이 「딸」을 꽃분이로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빈부의 배역은 준비돼 있으니 그 원인이 일제임을 증언하도록 박노식의 뒤에 일본순사 한명만 세우면 배역은 늘릴 것이 없다. 줄거리도 어머니가 칼을 놓고 수갑을 받는 대신 그 칼을 계속 휘두르기만 하면 모성의 자기희생이라는 해법 대신 혁명에 의한 해방이라는 해법이 들어선다. 그것은 「피바다」의 어머니가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이 청순가련형의 처녀들은 남북분단으로 운명이 갈린다.남쪽에서는 악극단들이 영화에 밀려 문을 닫았고 그들은 무대를 잃었다. 북으로 간 꽃분이는 팔자가 편듯했다.꽃분이의 화신인 최해옥이 김정일로부터 그처럼 총애를 받으면서 어떻게 꽃분이의 가녀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 꽃분이가 붉은 옷을 벗었다.그보다는 남북 모두 한시대를 벗게 됐다. 이번 사건이 아니어도 북한은 진즉 「꽃파는 처녀」시대를 탈피했어야 했다.그것은 작품성과는 무관한 이야기다.항일 빨치산들이 해방구에서 공연한 이 작품은 그 수준을 떠나 존재가치를 갖고 있었다.당시 대부분 고향에 가족을 두고온 관객들에게 꽃분이는 자신들의 딸이었다.그래서 이 작품은 신파극같은 내용을 떠나 말그대로「사회주의적 리얼리즘문학」의 상황적 진실을 지닌 셈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 작품은 막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우선 북한에서 지주는 사라진지 반세기가 넘고 대중들의 삶은 꽃분이 시대처럼 고달프니 「주사 나리」를 「당간부 동무」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밖의 무대배경은 더 바뀌었다.「일제」는 사라졌지만 「경제대국 일본」은 더 크고 무서운 몸집으로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그것은 저쪽만의 사정은 아니다.대일무역적자는 계속 늘어나도 해법이 없는등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얼마전에는 일본경비정이 우리 어선을 끌고가기도 했다.그것은 군함이 아니지만 어쩐지 1875년 침략의 선봉으로 강화도에 나타난 운양호를 보는 것만 같았다.그것은 단순한 느낌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일의 군사력이 운양호와 강화도초지진포대만큼 차이가 난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극일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요란하나 그 방법이 일본의 「천황」을 「국왕」으로 부르는 수준이다.이런 극일의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나 이웃나라 원수의 호칭도 몰라보는 무식쟁이나 청맹과니를 자처하는 것만 같아 우선 불안하다. 따라서 이번에 꽃분이가 우리 주변으로 온 것이 어느 편의 승리인지 패배인지를 따질 처지가 아니다.우리는 최해옥의 망명으로 북한당국의 체면이 꽃분이네가 불지르고 떠나버린 배가의 집꼴이 돼버린 모습을 전처럼 즐기기보다는 다같이 수습해야 할 것이다.이제 우리는 「민족사의 비용」이라는 말을 익혀야할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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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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