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주요 은행에 지분 투자를 단행한 이후 은행 경영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은행들은 공적자금을 받은 만큼 정부 입김에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정부가 은행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는 불만도 공공연히 표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제 발등에 붙은 불 끄기에 급급한 은행들이 정부의 압력성 주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정부가 지난 10월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핼리팩스뱅크(HBOS), 로이즈TSB 등에 370억파운드를 투자, 이 은행들을 국유화한 이후 이들 은행의 경영진에게 "중소 기업과 주택 매입자에 대한 대출을 늘리라"고 수시로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로서는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영세 기업과 잠재적 주택 매입자를 지원하는 게 급한 상황이다. 영국 중앙 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한번에 무려 1.5%포인트나 내려 3%로 떨어뜨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은행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영국정부가 은행들에게 모기지 대출 금리를 낮출 것을 요구했지만 절반 정도만 이를 받아들였다. 나머지 은행들은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유보한 채 "대출 금리는 작동 원리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거나 "정부 요구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수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정부가 금융권에 대한 감독강화를 너무 노골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영국 재무부가 은행 자산을 관리할 별도의 회사를 설립한 것을 두고서도 은행 경영권 개입 시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정부는 이런 시각을 부담스럽게 여기면서도, 은행 지분을 보유한 이상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최근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투입한 만큼 은행권으로부터 반대 급부적인 조치도 있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