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둑이 터졌다. 1990년 9월12일 새벽3시50분, 행주대교 남쪽 1㎞ 지점. 닷새나 쏟아진 폭우로 불어난 강물이 일산제방 250m를 삽시간에 무너뜨리며 고양군 일대 7개 면을 삼켰다. 붕괴가 감지된 시각은 2시45분. 비상근무에 들어가 제방구간을 순찰하던 육군 30사단 장병들에 의해서다. 조그만 구멍 12개를 발견한 순찰조의 긴급보고를 받은 군은 3시45분 지원병력과 장비를 투입했으나 흙탕물은 이미 일대 농경지를 노도와 같이 삼키기 시작했다. 검은 새벽은 4만5,000여 지역주민들에게 악몽이었다. 군의 긴급경보가 아니었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뻔한 상황.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가재도구와 가축을 모두 잃고 수확을 앞둔 농사도 망쳤다. 주민들은 정부를 탓했다. 전면보수 건의를 수없이 묵살 당했기 때문이다. 무너진 제방은 1935년 일제가 토사로 축조한 시설. 1984년에 붕괴를 겨우 모면하고서도 경기도와 건설부가 관할을 미루며 부분 땜질에 그치다 사고를 당했기에 분노가 더 컸다. 흉흉한 민심은 ‘서울 강남의 제방 붕괴 압력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일산제를 무너뜨렸다’는 유언비어까지 낳았다. 사후처리는 여느때와 똑같았다. ‘천재지변이냐 인재(人災)냐’를 놓고 싸우다 건설부 장관과 충주댐을 잘못 관리한 관선 충북지사가 해임되는 선에서 책임 공방을 마무리하고 주민들에게 융자금 몇 푼을 지원했을 뿐이다. 을축년(1925년) 대홍수 이래 최악이었다는 일산제 붕괴의 흔적은 화려한 일산 신도시에 가려 찾아볼 수 없지만 재해는 반복되고 있다. 1996년에는 연천댐이, 2006년에는 안양천 제방이 무너졌다. 또다시 초가을이다. 방법이 없을까. 알곡과 과실을 여물게 할 따뜻한 남국의 태양을 기다릴 게 아니라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