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해외수익 비중을 현재 20%에서 2년 내에 40% 수준까지 끌어 올릴 계획입니다. 국제적인 투자은행(IB)으로 인정받으려면 해외에 나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이 정도는 돼야 할 것입니다.” 오는 12월 취임 1주년을 맞는 김창록(57ㆍ사진) 산업은행 총재는 IB를 지향하는 산은의 포부와 역할을 내내 강조했다. 김 총재는 “산업은행의 뱅킹 역량과 대우증권의 IB 업무, 여기에 산은자산운용의 기능을 결합해 종합금융회사로 발전시켜 국내 자본시장은 물론 해외에서도 경쟁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현대건설 매각에 구사주인 현대그룹이 참여하는 문제와 관련, “특정 인수후보를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며, 과거 은행권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던 옛 주인이 그 회사를 다시 인수해도 괜찮은지 짚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총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산은이 미국의 타깃이 되고 있는 데 대해 “산은은 국내 금융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으며 미국 금융사들도 이 보호하에서 영업하고 있는 것”이라며 “산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면 장기적으로 미국도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이 ‘글로벌 IB’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지요. ▦산은은 우선 법률상 배타적인 업무가 없습니다. 프랑스나 독일 등의 개발은행에는 법률로 독점적 업무가 주어져 있지만 우리는 그런 업무가 없지요. 과거에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했을 때는 산은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 역할도 많이 축소됐습니다. 또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금리 경쟁력도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금융시장이 은행 등 공급자 위주의 시장에서 수요자 시장으로 바뀌면서 산은은 어느 시장에서도 열세를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 시장의 니즈(needs)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종합금융 서비스를 갖춰놓고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산은의 체계와 역할을 어떻게 구상하고 계십니까. ▦취임 후 외국의 글로벌 IB들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IB들의 공통적인 비즈니스 라인은 뱅킹과 IB, 그리고 자산운용이더군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은행 본체만 갖고는 안 된다는 거지요. 산은은 자체적으로 설비자금 공급 등 뱅킹 노하우가 있고 앞으로 대우증권의 IB 역량을 증대할 계획입니다. 여기에 산은자산운용의 기능이 결합되면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또 앞으로 산은이 공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할 계획입니다. 투자에서 결과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바이오 산업이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문화산업, 환경산업 등이 그것입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산은이 기여할 수 있습니다. 치매환자를 보호할 전용시설이나 보육시설 설립에 민간자금을 동원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맞게 되면 북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도 산은이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미 FTA 협상에서 유독 산업은행이 타깃이 되고 있는데요. ▦FTA 협상의 목적은 장벽 철폐를 통한 상생이 아닙니까. 그리고 산은의 목적은 공공성에 있지 수익 극대화에 있지 않습니다. 산은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고 외국 금융회사들도 이 보호 아래 장사하고 있는 겁니다. 산은의 기능이 약화되면 미국도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런 견해를 정부 당국에 전하고 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체성 논의가 시작된 후 수출입은행과의 영역충돌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산은은 지난 40년간 국제금융을 해왔고 해외에서 쌓은 신용도도 상당합니다. 이런 신용도로 외화조달 방식을 바꿔 차입비용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산은에 해외업무를 하지 말라고 하면 국가적으로 이익이 되겠습니까. 6월 ‘베이징 구상’ 발표 이후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의지를 보이면서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사실입니다. 국책은행 사이에 업무충돌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수출입은행이 대외활동을 하고 국가적 역량이 부족할 때 산업은행이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금융시장에서의 역할은 수요자에게 맡겨야지 인위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건설 매각작업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구사주의 인수전 참여는 어떻게 풀 생각이신가요. ▦특정 회사를 배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 경영 실패로 금융권에 엄청난 손실을 끼친 구사주가 다시 그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데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현대건설의 98% 감자로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의 반감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구사주의 인수전 참여에 대해서는 현재 아무런 툴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사회적인 관행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다음달이면 취임 1주년입니다. 지난 1년 산은의 경영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무엇보다 직원들의 업무자세가 바뀐 것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1년 전 정체성 문제로 전전긍긍하던 때 취임해 전직원을 대상으로 혁신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서비스 제공을 강조해 이제는 모든 직원이 뛰어다니면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산은의 공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혁신형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인데 10월 말까지 총 2조3,000억원가량을 공급했습니다. 특히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신용등급 ‘BB’급 이하의 혁신형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총 1,000억원 규모의 구조화금융상품을 개발,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베이징 구상에서 밝힌 대로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아 우즈베키스탄의 대우은행을 인수했고, KDB브라질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중국과 인도ㆍ태국 등에 점포를 신설하면 이머징마켓에서의 거점 확보는 어느 정도 마무리됩니다. 이밖에 조만간 중국 동북 3성, 몽골 개발은행 등과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할 계획입니다. ● 산은을 금융사관학교로
매년 직원 10~20% 교육…내년초 조직개편도 김창록 산은 총재는 앞으로 몇 년 후 산업은행이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며 그 사이에 은행원 교육을 강화, 산은의 새로운 틀을 짜고 국내 금융기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즉 산은을 금융사관학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교육ㆍ훈련 부문 예산을 확대해 다수의 직원들이 금융시장에서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직원 중 10~20%가 매년 교육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이렇게 5년 정도를 투자하면 전직원이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건설ㆍ하이닉스 매각 등 수익에 기여할 사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수년 동안 산은의 수익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럴 때 인재개발에 과감히 투자해야 장기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은 직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 초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올해 받은 'A T 커니'의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비효율적인 조직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고객 위주의 기업금융전담역(RM)제도를 도입한다. 산은 조직개편의 핵심은 전체 업무 중 24개의 전문직군을 선정, 이 부문에 전문역량을 갖춘 직원을 장기 배치한다는 것. 순환보직제를 없애고 일부 직원을 특정 업무의 '스페셜리스트'로 양성하기 위한 계획이다. 김 총재는 "우리가 키운 인재를 다른 금융사에 빼앗길 수도 있다"며 "하지만 산은이 양성한 우수한 인재들이 금융시장 곳곳으로 나가 활동하게 되면 금융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발자취
재경부·금융감독기관 요직 두루 거쳐 김창록 산은 총재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라는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7년 전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준비하면서 읽었는데 어느 날 풍족하게 누리던 혜택이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변화의 시대에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력을 쌓아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김 총재는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기관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왔다. 지난 73년 행정고시 13회에 합격해 공직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재무부 국제관세과장ㆍ생명보험과장ㆍ국제투자과장ㆍ국제금융과장ㆍ외환정책과장ㆍ국제금융과장을 거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재경관,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01년에는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맡았으며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거쳐 지난해 말 제33대 산은 총재로 취임했다. 그의 좌우명은 '소기무일(所其無逸)'. 서경(書經) 주공편에 나오는 이 말은 '군자는 항상 편안하지 않음에 처해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의 고통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지인들은 그가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노력파'라고 평가한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04년 한국외국어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김 총재는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자이며 오래전부터 장애우 교사활동, 탈북자 돕기 등에 참여할 정도로 소외계층과의 '더불어 살아가기'에도 관심이 깊다. 그래서인지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더욱 활성화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체성 확립, 국제적인 투자은행으로의 도약, 글로벌 시장 개척, 금융인재 육성, 윤리경영 정착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김 총재는 "산은의 미래를 준비한, 오래도록 기억되는 CEO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약력 ▦49년 경남 창녕 ▦68년 부산고 ▦73년 서울대 무역학과 ▦77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8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제학과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박사 ▦73년 행정고시(13회) ▦87년 재무부 국제관세과장 ▦95년 OECD대표부 재경관 ▦98년 재경부 경제협력국장 ▦2001년 국제금융센터 소장 ▦2004년 금융감독원 총괄부원장 ▦2005년~현재 산업은행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