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34.영업과 편집의 조화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부 유통업의 경우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30%의 상품이 매출의 70%를, 나머지 상품이 매출의 30%를 올리면 영업전략이 비교적 잘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출판사의 경우 차이가 더 커서 20%의 도서가 80%의 매출을 올리고, 나머지 80%의 도서가 20%를 메우는 것이 보통이다. 심할 경우 10대 90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반이 탄탄한 회사일수록 기획상품이 큰 실패 없이 고르게 잘 판매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사 역시 `빅 셀러`보다는 `스테디 셀러`가 많은 쪽이 롱런을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실제 오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대형 출판사들은 빅 셀러로 승부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마인드에 바탕을 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공든 탑을 쌓아올린 결과라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야심찬 기획과 마케팅으로 온갖 미디어를 발판 삼아 급성장하다 하루 아침에 쓰러져간 곳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부 해외 저작물의 유치경쟁을 보노라면 출판이 복권만큼이나 투기성 사업이 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30여 년 역사의 예림당의 경우 `이야기극장` `무지개극장` `과학생활만화학습` 등 시리즈 전체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단행본이 출판사에 기록될 만한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긴 빅 셀러는 없다. 다만 신중을 기해 낸 책 대부분이 고루 제 역할을 함으로써 안정된 기반 하에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이 문화 산업이다. 특히 그 핵심이나 다름없는 출판분야는 지금 아우성이다. 매출은 예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대형 서점까지 부도가 나는가 하면 기획에서 편집까지 먼저 투자를 한 책도 인쇄를 하기 전에 보류를 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나는 처음 출판을 시작할 당시 혼자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영업까지 했다. 영업을 하면서 비어 있는 시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맨 처음에 낸 유아용 그림책은 성공적이었다. 뒤이어 낸 짤막한 글줄을 곁들인 세계명작 그림책은 예림당의 기반을 갖추게 했고 출판 범위를 넓혀 낸 초등생을 위한 창작동화며 전래동화ㆍ명작 동화도 역시 쇄를 거듭해 찍는 행운을 안았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 행운이 아니라 경험에 바탕을 둔 기획출판의 결과였다. 그런 점에서 초창기에 출판한 모든 책들은 스테디셀러가 된 셈이다. 물론 그 일을 혼자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획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나의 사업적 구상을 책이라는 실체로 구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출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윤두병`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기획ㆍ편집 디렉터라 할 수 있는 윤두병은 당시 프리랜서로 여러 출판사의 일을 맡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의욕은 넘치지만 가난한 출판인에 불과했고 그는 편집 디자인 분야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서로 배짱이 맞아 저학년 동화책을 만들면서 예림당 편집장으로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영업에 자신 있는 나와 누구보다도 책 만드는 데 자긍심이 있던 그와의 `결합`은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 주는 관계로 승화해 갈 수 있었다. 윤두병은 편집ㆍ디자인 솜씨만 좋은 것이 아니라 넘치는 아이디어 맨이었다. 나 역시 모험적인 기획들을 더러 밀어붙이지만 그는 나로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도전적이고 새로운 책들을 생각해 내 `이걸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로 나를 끙끙거리게 만들곤 했다. 80년대 중반 그는 직접 출판사를 내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우여곡절을 겪다가 안타깝게 3년 전 위암으로 타계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함께 열정을 불태웠던 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삼가 명복을 빈다. <김홍길기자 wha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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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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