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6일] 샤를 베도


프레드릭 테일러. 과학적 관리기법의 원조다. 당대의 그는 최고였을까. 아니다. 20세기 초반 컨설팅 1위는 따로 있다. 샤를 베도(Charles Bedaux). 세계 18개국, 1,000여개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한 사람이다. 1887년 10월26일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그의 일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총명했으나 반항적인 기질로 16세에 퇴학 당하고 매춘 알선과 주먹질로 잔뼈가 굵었다. 인생의 전환점은 베도를 아끼던 깡패 두목의 피살. 지하조직 간 전쟁을 피해 미국에 이주한 베도는 11년간 공사장 막일과 접시닦이ㆍ치약ㆍ보험외판업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가구공장을 차려 성공을 거뒀다. 비결은 시간연구를 통한 생산성 극대화. 경영비법에 ‘스피드업(speed up)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별자문에 응하던 그는 1925년 아예 전문회사를 세워 컨설팅업에 뛰어들었다. 활황을 타고 불과 2년 만에 백만장자에 오른 그는 1927년 파리로 돌아왔다. 금의환향한 뒤에는 아낌없이 돈을 뿌렸다. 대규모 탐험단을 조직해 알래스카 탐사에 나서고 옛 성채도 사들였다. 사랑을 위해 대영제국의 왕위를 버린 윈저공과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의 결혼식도 그의 저택에서 열렸다. 성공가도에 암운이 낀 것은 전쟁. 프랑스의 친독일 비시정권에 붙어 1942년 나치의 사하라 송유관 건설을 위해 북부 아프리카 지형을 조사하던 중 연합군에 체포돼 미국으로 끌려갔다. 재판이 열리기 직전인 1944년 음독자살. 향년 57세였다. 타살이라는 논란도 잠시, ‘국가반역죄인 샤를’과 컨설팅 업적은 얼마 안 지나 잊혀지고 말았다. 다만 희미한 흔적은 남아 있다. 샤를 베도라는 이름을 가진 몇몇 회사가 아직도 유럽에 존재한다. 실패로 끝난 극지탐험 길에는 알래스카 고속도로가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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