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문제로 정부와 대학들이 각을 세우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마디 언급하는 통에 마치 벌집을 쑤신 듯 야단이다. 본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군더더기들만이 남아 전혀 다른 이슈로 변질되는 형국이다. 양측의 주장이 3차원 공간에서 서로 어긋난 직선처럼 접점 없이 허공만 가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이 과연 ‘대학 입시’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일까. 대학 입시를 대학과 정부 두 축으로 설정해보면 문제의 핵심은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먼저 대학의 입장은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대학 자체의 ‘본고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 주장하는 더 ‘우수한 학생’의 기준은 무엇이며 단 한차례의 본고사로 과연 그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지금 대학은 입시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과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빛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기도 했고 월드컵 축제를 훌륭하게 치러내며 새로운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그 사이 ‘정보사회’의 개념이 보편화됐고 권위주의와 기득권 세력이 몰락하면서 신 평등주의가 탄생하는 시간도 목격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지역간ㆍ국가간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유럽은 미국에 대항해 하나의 거대한 국가(EU)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가 하면 유전자 해독이나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신세계’로 인류를 인도하고 있다. 이렇게 다이내믹하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인재들을 과연 우리 대학들은 자신 있게 키울 수 있는 준비와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이러한 인재들을 키우려면 적어도 대학이 사회의 변화를 앞질러나가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입시보다 어떻게 키우는가가 더 중요한 까닭이다.
대학은 향후 십년을 내다보는 지식과 창조적인 사유를 통해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과제들을 구상하고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들을 길러야 한다. 예를 들면 향후 동북아 공동체를 통한 영구적인 평화와 번영에 대한 구상, 증가되는 사회복지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경제발전을 통한 지속 가능한 미래의 설계,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야기된 사회 문제 및 인성의 변화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등. 이 같은 다양한 과제들을 푸는 것이 바로 21세기 대학의 역할이자 임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 내부로부터 그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변화는 물론 ‘전문가의 이기심’과 소위 학자로서의 ‘유유자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시작될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또 다른 한 축, 정부가 주장하는 ‘내신 반영’ 역시 그 자체보다는 원천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대학이 원하는 우수한 인재는 아마도 앞서 열거한 다양한 문제들에 도전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성, 다원적 사고, 그리고 훌륭한 인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의 ‘어려운’ 본고사보다는 고등학교 3년의 생활을 기록한 ‘내신’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그 ‘내신’이 몇 개 등급으로 나뉜 ‘숫자’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이러한 ‘무정보’의 내신은 대학 당국자들에게는 사뭇 맥 빠지는 자료임에 틀림없다. 이를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적극’ 반영하다 보면 오히려 학생 선발 원칙에 역행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훌륭한 내신 정보’가 정상적인 교육 하에서 가능하다면 결국 답은 ‘공교육의 정상화’로 돌아간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자고 밤에 학원에서 눈을 초롱초롱 밝히는, 이른바 ‘사교육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공교육의 정상화는 꼭 이뤄져야 한다. 국민들이 쥐어짜듯 마련하는 사교육비의 10분의1만 정부가 출연해 IT 기술과 시스템을 활용하고 인터넷ㆍ휴대폰, 그리고 TV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다면 ‘공교육 정상화’는 수년 내로 필히 이뤄지리라 생각한다.
입시논쟁, 지겹지 않은가. 이제 대학과 정부가 서로 갈등할 것이 아니라 ‘연대’해서 수험생들이 원하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올해 이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본다. 다만 ‘대학 입시’라는 거울을 통해 양측이 문제의 본질을 서로 비춰보는 계기가 된 것은 어쩌면 이번 ‘논란’의 수확일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대학은 대학 본연의 임무를 위한 ‘변화’라는 과제를,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방안 모색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기 제자리를 찾아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