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美증권사 수수료 자유화로 국제경쟁력 길러

당시 상위 20개사의 증권사중 메릴린치 등 3개사만 온전하게 살아남았을뿐 나머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치 못해 파산하거나 동종 증권사 또는 은행 보험 등 타 금융권과의 제휴나 합병을 통해 생존방법을 찾아야 했다.특히 수수료 자유화 이후 증권과 은행간 경쟁과 합병이 본격화하면서 은행과증권의 분리를 규정한 글래스스티걸 법안은 사실상 사문화했다. 당국은 치열한 경쟁환경을 감안해 법적으로 업무영역간 장벽이 존재하는데도 불구, 은행의 주식인수 및 투자신탁 판매 등 실질적인 증권업무를 은행에 허용했다. 이에따라 인수업무에서 상위랭킹을 차지하는 은행계 증권회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70년대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도의 IMF체제가 붕괴하고 두번의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인플레 상승이 심화, 미국경제가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이에따라 미국 다우지수는 70년대 내내 1,000포인 전후의 지리한 박스권을 나타냈다. 이런 터에 수수료 자유화라는 환경변화는 브로커리지 수입이 절대적인 증권사 경영에 치명타였다. 그러나 정부 의회 매스컴이 고정수수료는 거래소 회원 증권사의 담합체제(카르텔)에 다름 아니다며 강력히 수수료 자유화를 외치고 나섰고 결국 기존 체제는 와해됐다. 또한 투신권 등 기관투자가의 인덱스펀드 운용이 점차 확대되면서 증권사들의 수수료 수입은 더욱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주가지수 흐름에 연동돼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일괄매매하는 인덱스펀드는 증권사의 조사자료를 받을 이유가 전무했다. 따라서 증권사에 지불되는 수수료는 현저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국내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불안해 인덱스펀드가 발달해있지 않지만 미국은 펀드의 절반 정도가 인덱스펀드다. 증권사들은 살아남기위해 브로커리지업무 외애 트레이딩이나 인수업무 M&A업무 등으로 수입원을 다각화시켜 나갔다. 74년 업계 위탁수수료 수익이 전체 수입의 48.9%였으나 97년엔 14.7%로 줄어들었다. 대신 M&A수수료, 사모사채 인수관련 수수료 등의 수입이 75년 9.1%에서 97년 50%로 확대됐다. 수익성을 쫓아 사채 인수, M&A, 트레이딩업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확대됐고 증권사들은 이 과정에서 자본금을 키우고 각종 투자기법을 발전시켜나갔다. 수수료 자유화가 수수료수입에 안주하던 미국 증권사를 오늘날 세계 최고경쟁력을 보유한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킨 촉발제 역할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75년 수수료 자유화 이후 극심한 업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71년 당시 상위 20대 증권사 대부분이 도태되거나 합병, 하위 증권사로 내려앉는 운명을 맞았다. 71년 2위 증권사였던 바흐&코는 필립브라더스에 인수됐고 15위였던 E.F. 후톤은 도산했다. 12와 17위였던 퍼스트보스턴과 DLJ는 각각 외국계 금융기관인 크레디스위스와 이퀴터블에 인수됐다. 최근 국내에서 점화한 수수료 인하경쟁은 지난 1년간 급속히 팽창한 사이버 거래수수료 인하전쟁으로 이미 예견된 터였다. 국내업계 내에서도 고정수수료는 사실상 업계내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한 담합체제라는 것을 실토해왔다. 국내 증권사는 75년 당시의 미국 증권사 수준에 와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개방화시대를 맞아 자본력과 세계 네트워크과 첨단투자기법을 보유한 외국금융기관들이 국내시장에 들어올 것에 대비해 국내증권사들도 수익원을 다각화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개발하고 투자 노하우를 기르는 것이 시급한때다. 이병관기자COME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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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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