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반칙 부추기는 사회


우리나라의 법치주의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우리나라 법치 순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5위로 최하위권이라는 세계은행의 통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치주의가 확립돼 있어야 국민이 편안해지고 경제도 살아난다. 법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범죄가 만연하고 사회질서가 불안한 곳에서 국민의 안녕을 기대할 수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에 대한 법치주의, 즉 재산권 보호와 영업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기업의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법치주의 확립을 국가 경쟁력의 주요 요소로 보고 법률을 정비하고 법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법치주의 사회가 되려면 국민의 준법의식과 함께 법률 자체가 국민이 지킬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비현실적이고 불명확해 지킬 수 없는 법률은 국민 다수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뿐이다.


대표적인 악법은 낡은 규제다. 부모자식 간의 증여세 공제한도가 대표적 사례다. 증여세 공제한도는 1993년 3,000만원으로 개정된 뒤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당시 3,000만원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현재 가치가 6,000만원 정도지만 법은 여전히 그대로다. 자녀에게 3,000만원 이상 전세금을 보태줬다면 그 부모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1996년 400달러로 정해진 해외여행객 면세품 구매한도 역시 동작 그만이다. 일본의 2,400달러에 비해 턱없이 적을 뿐 아니라 중국의 750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해외로 나간 여행객이 1,400만명인데 이중 일부는 아마 면세 한도를 넘긴 범법자일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규제가 위법을 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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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규제 역시 국민을 범법자로 내몰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의 법령검색 결과 '현저한'이란 단어가 들어간 조문이 무려 1,000개가 넘었다. '부당한'이란 단어가 들어간 조문도 1,500개나 된다. '현저한'이나 '부당한'의 명확한 기준은 무엇인가. 불분명한 규제는 위법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국민들은 합법과 위법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내용을 몰라 본의 아니게 범법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는 1만4,000건에 달했다. 올해도 5개월 만에 900개의 규제가 새로 생겼다. 정기적인 법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규제를 모두 꿰뚫기는 불가능하다. 이 경우 법을 어겨 적발되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 어렵고 억울함만 남는다. 결국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범죄자로 전락하고 법을 불신하게 된다.

낡은 규제, 애매모호한 규제, 너무 많은 규제로 인해 '반칙 부추기는 사회'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현재의 규제는 국민 다수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위험한 수준이다. 법을 왜 지키지 않는지 국민에게 묻기 전에 과연 법 자체가 국민이 지킬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인 듯하다. 준법 인프라가 갖춰져야 법치를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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