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그녀는 예뻤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을 둔 필자와 학부모 30여명은 교실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한 시간 넘게 담임교사의 설명을 들었다. 앞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살짝 비치는 걸로 보아 교단 경력 15년은 충분히 넘었을 법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과 열정적인 말투는 갓 부임한 패기 있는 신입 여교사 같았다.

월평균 가계 도서구입비 최저 수준

생활ㆍ학습지도, 왕따 문제까지 새 학기 학부모 설명회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주제 중 내 귀를 유독 예민하게 한 것은 독서 지도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녀가 담당한 1학년 1반 학생들은 오전8시10분까지 입실해 1교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매일 30분씩 독서시간을 갖고 매주 한두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을 위해 온전히 바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 읽기 습관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 소설ㆍ에세이를 넘어 수준 높은 인문서나 클래식에 도전해보도록 강도를 높이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그녀의 온몸에서 광채가 나는 듯했다.


독서 지도를 하는 학교와 교사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내 아이가 평소 책을 꽤 읽는 축에 속함에도 이렇게 수선을 떠는 이유는 근래 출판환경이 절망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월평균 가계 도서구입비는 2만570원으로 지난 2003년 이래 가장 낮았고, 전국의 서점은 최근 10년 동안 1,000개 넘게 줄었다. 신간 평균 판매량은 1,400부도 안 돼 출판사들이 손익분기점도 못 맞추는 신간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내고 있는 실정이다. 독서인구가 급감하다 보니 전철에서는 책 읽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본격적인 입시 모드로 들어가는 중학교에서 매일 30분씩 독서를 강제하겠다는 딸아이의 선생님이 예뻐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출판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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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최신 모바일 기기를 통해 손쉽고 빠르게 지식ㆍ정보를 입수하는 마당에 책이 더 읽히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텍스트에만 몰입해서 사고력을 확장하는 데 독서 만한 게 있을까. 더구나 두뇌 발달이 왕성한 학생들에게는 현란한 인터렉션과 자극적인 게임보다 문맥 읽기를 통한 상상력의 극대화가 더욱 절실하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독서 진흥을 위해 지정한 '독서의 해'이다. 독서수준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영국ㆍ일본은 각각 2008년과 2010년을 독서의 해로 지정해 정부 혹은 민간이 주도하는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아이가 출생하면 그림책과 부모 가이드북을 제공하는 북스타트 운동도 영국에서 시작됐고, 2004년부터 시행된 문제 청소년을 위한 독서진흥 활동 또한 참고할 만한 제도다.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으니 요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왕따 문제를 독서운동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일본에서는 전국의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아침 10분 독서운동을 꾸준히 시행해 71.2%(2010년 8월 기준)의 학교가 참여하고 있다.

독서의 해 맞아 진흥책 펼쳤으면

독서의 해를 맞아 전국의 학교가 딸아이의 선생님이 하는 것처럼 30분 독서를 의무화해 우리 학생들이 그 시간만이라도 책에 집중하게 만들자고 하면 너무 야무진 꿈일까. 조금 더 욕심을 내 힐러리 클린턴이 영부인 시절 독서운동 전문가회의를 사상 최초로 백악관에서 열어 'Reading on the Knee(자녀를 무릎에 앉히고 책 읽어주기 운동)'를 대대적으로 펼친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독서운동을 추진하는 차기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나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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