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 손영석 한국외국기업협회장

대담: 이종환 산업부장 jwlee@sed.co.kr “한국은 외국기업이 투자처로 매력을 느끼기엔 세율이 너무 높습니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늘리려면 무엇보다 세율인하가 가장 시급합니다.” 손영석 한국외국기업협회장(TI코리아 사장)은 “지난 2년간 협회장을 맡으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외국기업을 대표해서 `세율인하`를 역설해왔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외국기업인들은 한국의 기업회계제도가 투명하지 않다고 생각, 투자를 망설인다”며 “그러나 외국기업들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 방향이 올바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새 정부가 개혁 조급증 때문에 `규제가 규제를 낳는` 악순환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일본보다는 역동적이고, 중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컨트리리스크가 낮아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기에 유리한 상황이며, 이를 잘 활용해 `동북아 중심국가`로 도약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가 곧 출범합니다. 외국기업, 기업인들은 새 정부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말 보다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노동 및 세제 규제의 개선에 대해 무수히 논의해 왔지만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르지 못했어요. 김대중 정부는 세율 문제에 관해서는 “복잡한 문제다, OECD국가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는 이유로, 노동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핑계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새 정부에서는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가시적인 실천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노 당선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흔들림 없는 재벌개혁 추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국기업들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외국인들은 기대와 우려를 함께 갖고 있습니다. 기업회계를 투명하게 하자는 데는 대환영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기업들이 엄청난 매출과 이익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했는데, 사실 외국인들은 갸우뚱하고 있어요. 한국의 회계기준이 국제기준과 다르기 때문이지요. 기업회계가 국제기준에 맞게 개선돼야 외국인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습니다. 한 기업이 어떻게 경영되고, 얼마나 실적을 남기고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나야, 투자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니겠습니까. 또 정부가 재벌개혁을 추진하면서 기업들을 강제로 이끌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개혁의 목표에 매달리다 보면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게 되고 `규제가 규제를 낳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새 정부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와 `동북아 중심 국가로 도약`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재계, 국민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두 가지 모두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은 동북아 3국 중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역동성을 상실한 듯 보이고, 중국도 한국에 비해 컨트리리스크가 큽니다. 한국이 이 지역에서 핵심적인 경제섹터로 부상하는 것은 여건만 놓고 보면 자명한 일이지요. 하지만 여건만 좋으면 뭐 합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린 세제와 노동 유연성에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마카오 등에 비해 너무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이를 서둘러 개선하지 않으면 `허브 코리아`는 요원합니다. -외국기업에게 한국은 비즈니스하기에 어떤 나라입니까. 칭찬할 부분은 없습니까. ▲한국은 외국기업인들에게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사업을 해본 기업은 대부분 만족을 표시합니다. 무엇보다 인적자원이 뛰어나거든요. 저희 TI의 경우인데, 아남반도체와 웨이퍼사업을 할 때 한국인 기술자에게 몇 개월 기술을 가르쳤더니, TI기술자의 솜씨를 금세 뛰어넘더라구요. 한국은 시장도 매력적이예요. 규모도 적당한 데다 중국보다 인프라가 잘 돼있고 컨트리리스크가 낮은 게 장점이지요. 이런 점 때문에 미국기업들이 본토의 생산시설을 이전할 때 한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겁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생활 초기에 교육ㆍ의료 문제에 대해 고충을 토로하지만, 한국이 지닌 투자처로서의 장점에 비하면 그리 심각한 건 아닙니다. -최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 하향조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국 길들이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신용평가기관이 현행유지 또는 등급상향을 발표한 것과 배치되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분명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을 겁니다. 몇 년전 일본도 무디스에 반발해 객관적인 평가기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혼쭐이 난 일을 기억하실 거예요.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만 내면 무슨 소용입니까. 방법을 찾아야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국가홍보`가 잘 돼 있다면, 국가신용도를 함부로 매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는 국가홍보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최근 유럽 최대의 전자업체인 필립스가 휴전선 부근인 파주에 LG전자와의 합작사를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안심하고 투자할 만한 나라”라는 외국 투자자들의 믿음으로 받아들여도 좋을까요. ▲사실 왜 파주인지 모르겠습니다. 군사지역인데다 인프라가 잘 돼 있는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땅값이 싸든지, 대북교역에 특별한 관심이 있든지 둘 중 하나겠죠. 한국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필립스만이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 필립스의 투자결정을 외국인의 신호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제가 잘 아는 일본 사업가가 돌연 한국으로의 출장을 취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요즘 북핵문제 등으로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지요. 미국은 더 심하다고 단언할 수 있고, 한국을 잘 모르는 여타지역 외국인들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세계 IT경기가 깊은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전환점은 언제쯤 마련될까요. 또 IT경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심각합니다. 불황이 워낙 장기화되다 보니 기업들이 눈치를 보고 있어요. 섣불리 투자했다가 불황이 계속돼 큰 낭패를 볼까 걱정하는 거죠. IT불황은 호황기 때 쏟아졌던 과잉물량으로 시장이 소화불량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올해 하반기께는 시장이 살아날 겁니다. 하지만 PC이후 뚜렷한 IT경기를 끌어올릴 만한 획기적인 기술도, 대체제품도 나오지 않고 있어 회복의 속도와 폭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3세대 이동통신이나 HDTV 등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두고 봐야지요. -메모리 반도체(D램) 가격이 연일 급락하고 있습니다. 가격하락의 원인은 무엇이고 하락세는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좀 더 넓게는 비메모리를 포함한 올해 세계 반도체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PC산업이 한계에 도달한데다 IT불황이 겹쳤으니 반도체 값이 떨어질 수 밖에 없죠. 그런데 PC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10%이상의 성장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텔레비전의 수요변화를 보면 잘 이해할 수 있겠죠. 따라서 반도체산업의 회복도 PC시장의 성장을 뛰어넘지 못할 거예요. 특히 반도체 중에서도 메모리가 가장 안좋은 상황입니다. 다만 세계1등 메모리업체인 삼성에게는 시장에서 군소경쟁사들을 몰아내고 확고한 시장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더 없는 호기가 될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메모리반도체 생산국입니다. 하지만 정작 수익률이 높은 비메모리 분야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같이 잘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업체들에게 특기를 살려서 메모리에 집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TI도 비메모리와 메모리를 겸하기 어려워서 메모리를 포기했습니다. 오히려 메모리 포기가 늦은 게 실책이었죠. 인텔이 TI보다 5년 앞서 메모리를 포기했는데, 만약 TI가 먼저 포기했다면 지금 세계 최고의 자리에는 인텔 대신 TI가 올라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동부아남반도체와 TI의 협상결렬로 0.13마이크론 제품의 제휴선이 대만 업체로 바뀐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파운드리(수탁생산) 일감의 70~80%를 TI에 의존해온 아남반도체에 타격이 예상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실 생각이십니까. ▲한국에 일감이 많아지면 TI코리아에도 도움이 됩니다. 회사 조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력했는데 아남쪽 투자가 지연되면서 차질이 생겼어요. TI는 벌써 0.13제품의 양산에 들어갔는데, 동부에는 생산설비조차 없으니 방법이 없는 것 아닙니까. 동부에서 공장신설 계획을 갖고 있으니, 기술이전 문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발자취]IT분야 외길 `골수 반도체맨` TI코리아서 20년… 한국인 CEO 올라 손영석 사장은 풍파가 많은 IT업계에서 흔들림 없이 외길을 지켜온 `골수 반도체 맨`이다. TI코리아는 그가 20년째 몸담고 있는 직장이다. 손 사장은 IT업계의 CEO라면 누구나 갖고 있음 직한 MBA 졸업장도 없다. 그런 그가 밑바닥 엔지니어에서 대표이사까지 오른 힘은 오직 `꾸준함`이었다. 그는 지난 1978년 삼성전자에 공채로 입사해 가전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IT와 인연을 맺었다. 삼성에서 5년간 생활한 그는 새로운 도전에 갈증을 느껴 외국계 기업인 TI코리아로 둥지를 옮겼다. 손사장은 이후 20년간 TI코리아에서 근무하면서 `꾸준함`을 앞세워 늘 남보다 한 걸음 앞서왔다. 그의 탁월한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지난 1993년 TI코리아가 주력 사업이었던 메모리 반도체를 포기하고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렸을 때였다. 당시 TI코리아는 D램을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에 주력하고 있었는데, 이 분야에 한국과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잇따라 뛰어들었다. 손사장은 이때 본사의 전략에 따라 디지털신호처리 시장, 아날로그 반도체, LCD 구동 IC등 미개척분야에 도전하는 한편, DSP 시장의 저변을 구축하는데 집중 투자했다. 그 결과 TI코리아는 DSP 시장에서 부동의 선두로 자리매김하고, 비메모리부문 매출도 10년만에 10배 이상이나 끌어올렸다. 주위에서는 이처럼 신속ㆍ정확한 그의 판단능력이 지난 20여년간 외길에 쏟은 꾸준한 노력에서 우러나왔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이러한 공적에 힘입어 지난 1998년 TI 코리아 최초의 한국인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꾸준함`의 원칙은 직원 채용 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세번 이상 직장을 옮긴 사람은 채용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임원진을 선택할 때도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이 아니라 TI 코리아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 중에서 승진시킨다. 손 사장은 스스로 “일복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2년째 맡고 있는 외국기업협회장도 그중 하나다. 그는 협회장으로서 `외국기업의 날`, `외국기업 투자포럼`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서 협회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약력 ▲1955년 대구 ▲대구고, 성균관대 전자공학과, 스탠포드대 고위과정 ▲삼성전자㈜ ▲TI코리아반도체 아시아 가전부문 이사, TI코리아 반도체 영업대표 부사장, TI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한국외국기업협회장 [내가 본 손영석 사장] 정수홍 피케이엘 사장 기술적 안목ㆍ마케팅 능력등 두루갖춰 학창시절엔 보컬 이끈 따스한 사나이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반도체 업계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회사다. 몇해 전 현대전자(하이닉스의 전신)의 한 핵심 임원은 “TI와 OEM 가격 협상에서 TI측이 OEM 물량을 줄이면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해서 놀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거래처의 기술을 먼저 검증해보겠다는 TI의 빈틈없는 전략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나와 중ㆍ고교 동기동창인 손영석 사장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 깐깐하기 짝이 없는 TI의 한국법인인 TI코리아의 CEO를 5년째 맡고 있다. 세계 3위의 반도체 회사인 TI가 자사의 한국법인을 이끌 CEO로 경영능력만을 갖춘 인물을 물색했다면 다른 적임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TI는 경영능력에 기술적 안목과 마케팅 능력을 두루 갖춘 CEO를 원했다. TI에서 20여년간 다양한 경험을 쌓은 손 사장은 이공계 출신이 홀대받는 우리나라에서 그 요구에 부합하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손 사장은 취임 후 기술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과 능수능란한 마케팅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TI코리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그는 IT기업의 리더로서 회사에서 젊은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는 늘 시장상황과 전망, 전략수립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그의 열린 생각과 열린 가슴이 창립 35년만에 첫 한국인 CEO를 맞은 TI코리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손 사장은 학창시절부터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빡빡머리 시절이다. 그는 빼어난 통기타 솜씨로 항상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었다. 성격도 활달해서 교내 보컬그룹을 만들어 리드하는가 하면, 만능 스포츠맨으로 각종 운동시합에서 발군의 솜씨를 발휘하곤 했다. 손 사장은 냉철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가슴 깊숙이 따뜻한 감성이 흐른다. 그는 성격까지 영락없는 `반도체 맨`이다. 마치 반도체가 빛이나 열에 반응해 전류가 돌듯 손 사장은 사람과 세상에 반응해 열의를 발산한다. TI코리아를 탄탄대로에 올려놓은 손 사장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을 대표하는 외국기업협회장으로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서로 바쁘게 사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게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고 소중한 것은 손영석 사장이 나의 친구이고 그를 만나면 즐겁다는 점이다. <정리=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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