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권력과 재벌

큰 힘을 가진 적을 굴복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설득이고 다른 한가지는 힘으로 무너뜨리는 진압이다. 마키아벨리의 사전은 설득의 한계를 경계한다. 설득에 의해 굴복된 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가진 힘의 크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힘의 구조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을 굴복시키는데는 무력진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지론이다.과도한 부채· 주가조작· 변칙상속이라는 개별적 사안으로 유수의 재벌들이 핀치에 몰려있다. 각기 하나씩 불거져 나온 사태요 사건이라고 보기보다는 커다란 흐름인 것 같다. 적어도 현재의 상황 아래서는 독자적 결정이 어려운 금융감독위원회와 검찰과 국세청이 거의 동시간 대에 대재벌공세를 펴고 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든 면이 있다. 이런 각도로 보면 권력 대 재벌의 적대적 대립이 전개되는 느낌이다. 정부가 재벌에 대해 구조조정을 요구한 이래 이 작업이 지리멸렬하자 법적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설득의 한계를 느끼고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닌가 보아진다. 물론 정부는 이 일련의 사태들이 재벌을 해체시키는 작업이 아니냐는 의문을 완강히 부인한다.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국가권력이 해야 할 정당한 책무를 발동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두 가지 사례가 생각난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중화학공업 정리작업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를 중심으로 재벌에 대한 성토 흐름이 있었다. 경제수석 비서관이었던 S씨는 「비(批)재벌론」이지「반(反)재벌론」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사실상 당시의 권력은 재벌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만 통치의 시너지 효과가 가능했으니 어떻게 보면 힘의 이원구조를 통합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는 노태우 대통령 때. 내부자 거래의 혐의를 두고 국세청은 10여개 재벌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정치적 목적은 깔려 있었다. 대통령이 「돈 안 받겠다」고 하니까 정치자금이 안 들어왔던 것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청지학자 N씨는 『정치란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개혁의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법과 정의를 실현시키려는 의미는 경제흐름을 우려하는 현실적 의미보다 크다. 그것이 보다 한국의 본질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권력의 문법책 자체가 개혁되었는가에 아직 확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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