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기소청탁 논란과 작은 세상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지난 1967년 5월 발간된 '심리학 투데이'에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작은 세상의 문제'라는 제목을 단 이 논문의 골자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와 연락을 하려면 6단계만 거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오마하와 캔자스에 있는 주민들에게 작은 봉투를 주면서 매사추세츠 한 신학교 학생 아내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신학생 아내를 모른다면 그녀와 가장 가까울 것 같은 사람에게 전해주라고 했다. 신학생 아내에게 전달된 봉투를 살펴보니 거쳐간 사람은 평균 5.5명에 불과했다. 제대로만 하면 6명 정도 거치면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이른바 '6단계 분리의 법칙'이라는 흥미로운 이론을 만들었다.


궁지에 몰리거나 아쉬운 일이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해줄 연줄을 찾는 게 인간의 당연한 심사다. 때로는 5~6명을 거치지 않고 바로 그 문제를 풀어줄 사람을 찾아 은밀히 부탁하기도 한다. 이른바 청탁이다. 한두 다리 거치지 않고 자신의 말 한마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면 속된 말로 '힘깨나 쓰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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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소청탁 사건으로 법조계가 뒤숭숭하다.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부장판사가 2006년 박은정 검사에게 나 전 의원을 비방한 네티즌을 기소해달라고 청탁했다는 의혹이다.

모든 청탁이 불법인 것은 아니다. 도의적 문제는 있지만 불법ㆍ위법이라 할 수 없는 청탁이 사실 너무 흔하다. 하지만 이번 기소청탁 의혹의 경우 판사의 청탁이 도의적인 문제가 아니라 법적으로 부당한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다. 현행 법관ㆍ법원공무원 행동강령 10조는 알선ㆍ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신의 청탁이 법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를 판사는 없을 것이다. 조사 결과 청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시민들의 분노는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불법인줄 알면서 태연히 부당한 청탁을 하는 판사의 판결에 과연 누가 승복하겠는가. 막강한 힘을 가진 판ㆍ검사들은 자신의 권력을 은밀히 이용하는 데 머리를 쓰기보다는 무엇이 법리이고 무엇이 도의인지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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