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멕시코:3/성급한 수입개방 「페소위기」 불러(경제를 살리자)

◎정치혼란·「OECD국」 과신도 한몫… 타산지석 삼아야멕시코시티에서는 서울 못지않게 교통체증이 심하다. 차량 행렬이 멈춰서면 7∼8세쯤 되는 꼬마 두어명이 잽싸게 거리로 뛰어나와 무동을 탄다. 꼭대기에 탄 어린이가 대머리 모습을 한 가면을 쓰고 한바탕 광대춤을 추고는 차량을 돌며 동냥을 한다. 그 탈춤 가면은 바로 전직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다. 멕시코에서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살리나스 전대통령을 꼽는다. 집권중 부정부패와 정치테러를 일삼았고 경제위기를 자초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멕시코사태의 단초는 94년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치아파스주에서 대규모 농민반란이 발생했다. 표면적 원인은 토지분배였지만 마야문명의 후예로 농사에 종사하던 인디언들이 스페인 정복자에 대해 항의하는 일종의 독립운동이었다. 70년간 장기집권한 제도혁명당(PRI) 지도부는 연말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만 넋이 빠져 손을 놓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집권당 내부의 권력 암투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마침내 그해 3월 집권당의 루이스 콜로시오 대통령후보가 북부 티후아나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9월 집권당 사무총장인 루이스 마시유씨도 암살됐다. 집권당 내부의 분란과 권력다툼이 본격화되자 소수 가진자와 외국인 투자가들이 돈보따리를 싸들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여기에다 대통령 친인척의 부정부패와 권력개입이 나라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살리나스 대통령의 친형인 라울 살리나스는 현재 구속된 채 대규모 자금을 국외로 빼돌린 혐의로 스위스은행과 미국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금융대란이 있던 94년초 멕시코의 외환보유고는 2백86억달러로 사상최대치를 기록, 외환부족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정치불안이 가중되면서 집권당 상층부마저 돈을 스위스은행으로 빼돌려도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그해 10월말 외환보유고는 연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백40억달러로 뚝 떨어졌다. 이런 형편에 카를로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는 자부심에 젖어 급속히 국내시장을 개방, 무역적자가 가중됐다. 93년 1백34억8천만달러였던 무역수지적자는 94년 1백84억6천만달러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카를로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외국인투자를 늘린다는 명분하에 환율시장에 적극 개입, 페소화 가치를 25∼25%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후임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12월초 멕시코의 외환보유고는 61억달러로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외국은행들은 멕시코의 채무이행 능력을 의심, 대출자금 회전을 중단했다. 그러자 신정부는 12월22일 더이상 대외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음을 공식선언한 뒤 페소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달러당 3.45페소였던 환율이 이듬해 1월10일 5.78페소로 66.7%나 절하됐고 주가는 40%나 폭락, 경제는 일거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기층민중의 과격한 투쟁, 선거를 앞둔 정쟁 격화, OECD 가입에 따른 무모한 시장개방,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안이한 대처 등이 겹치자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내려앉고 말았다.<멕시코시티=김인영 특파원>

관련기사



김인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