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전국이 떨고 있을때 대구섬유업계는 한없이 치솟은 환율덕분에 오히려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우선 환율하락이 일차적 요인이었고 그 다음은 IMF특수를 누리면서 경쟁적으로 내린 수출가격이 발목을 잡았다.직물의 수출가격은 고급 폴리에스테르의 경우 지난해초까지는 야드당 2달러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1달러대로 떨어진 상태다. 벨벳은 2.5달러에서 1.8달러까지 떨어져 있다.
지난 1월 대구·경북지역 섬유수출은 2억6,3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나 줄었다. 특히 이 지역의 주력품인 폴리에스테르 등 직물은 2억2,1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동기보다 22% 감소했다. 홍콩·두바이·중국 등 주력 수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공장가동률도 뚝 떨어졌다. 대구 달성공단 D교역의 경우 생산량을 90%까지 줄일 정도다.
『섬유업계는 전통적으로 3월부터 10월까지 성수기여서 공장가동이 대폭 증가하지만 올해는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IMF 반짝특수를 누리면서 지나친 가격경쟁을 벌인데다 해외시장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시장기능이 뒤죽박죽입니다』 이회사 K사장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부 업종은 업계가 자율적으로 감산을 결의하고 있다. 벨벳을 생산하는 40여개 업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공장가동은 「무덤행」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자율적으로 조업을 줄이고 있다.
특히 대구 섬유업계는 『지금 공장을 가동하지 않는 기업들은 능력있는 회사』라는 아이러니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동우교역 송석준사장은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있는 업체들은 가능한 가동을 줄이지만 여유가 없는 업체는 어쩔 수 없이 적자가동을 하고 있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다 해외바이어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다. 某섬유업체의 경우 이달초 중동 두바이에 10만달러 규모의 폴리에스테르를 수출했다가 현지 바이어가 턱없는 이유로 클레임을 걸어 어쩔 수 없이 물량을 회수하는 등 곤혹을 겪었다.
대구 섬유업계가 이렇게 깊은 수렁에 빠져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업계의 제살깎기 경쟁때문이다. 섬유업계의 과당경쟁은 이미 그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대구지역 섬유 등을 취급하는 소규모 무역업체가 200여개나 신설돼 해외시장에서 덤핑수출을 주도한데다 부도업체들도 공장정상화를 명목으로 세금과 금융부담없이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어 정상적인 기업을 골탕먹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부도업체의 정상가동을 자제해줄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물론 모두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대구시 북구 검단공단의 서광물산이나 구미공단의 선일섬유같은 경쟁력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해외마케팅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업체들은 이같은 바람을 전혀 타지않고 있다.
대구경북견직물협동조합은 조합에 가입된 500여개 회원업체 가운데 30%정도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도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 섬유의 미래가 달린 「밀라노 프로젝트」 추진도 경쟁력 있는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으로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조합의 장해준상무는 『대구 섬유업계는 올 한해 엄청난 구조조정을 거칠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구 섬유가 해외바이어의 입김이나 시장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김태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