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보다는 채권만 사들이는 기관의 `채권 편애`현상이 자본시장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주식투자를 늘렸다가 잘못될 경우 그 책임을 다 져야 하는데 어떻게 주식 비중을 늘립니까.”
연기금을 비롯한 은행ㆍ보험 등 소위 `기관투자가`들의 주식투자 기피현상에 대해 개인 투자자 및 증권업계의 비판과 기관 관계자들의 항변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들어보면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충분한 설득력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실 속에 자본시장 구조가 갈수록 왜곡돼가고 있어 증시를 통한 경제 및 내수 회복도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증시는 외국인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고 채권시장은 물건이 없어 못 사는 이상기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인수ㆍ합병)과 국부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연기금의 경우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투자 비중이 40~60%에 달한다”며 “주식투자 비중이 3~4%에 그치고 채권비중은 80~90%에 이르는 것은 분명히 개선돼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한다. 기관의 투자비중이 최소 30%는 돼야 건전한 주식시장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증시에는 기관투자가가 없다”=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경우 지난 9월말 현재 금융자산 170조원중 3.7%인 6조5,000억원만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전체 자산의 40~60%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선진국 연기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은행과 보험도 총 자산 1,200조원중 주식투자액은 2조5,000억원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채권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10월말 현재 전체 자산의 90% 이상을 채권에 투자하고 있으며 사학연금ㆍ공무원연금 등 나머지 연기금의 채권투자 비중 역시 80%를 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 오르고 반대로 팔면 떨어지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눈치보기 바쁜 연기금=정부는 연기금의 과도한 채권투자 비중을 줄이고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에 들어갔지만 연기금 등 기관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법개정 만으로는 주식투자 비중을 늘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매년 국회 국정감사나 언론에서 주식투자 수익률 때문에 질타당하기 일쑤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운용본부장은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경질되는게 다반사다.
증권연구원의 고광수 박사는 “연기금의 투자 목적은 국민의 노후 생활자금을 안전하게 불려주는 것이라며 해마다 국회에서 주식투자 성과를 놓고 얻어터지는 일이 반복되는 데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라는 것은 오히려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기관의 장기투자 시스템 마련해야=전문가들은 기관투자가들이 꾸준히 주식투자 비중을 늘려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증시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주식투자의 걸림돌인 투자손실 우려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에 상정돼있는 기금관리기본법이 하루 빨리 통과돼야 하고 단기적 투자평가보다는 중장기적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갖춰줘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견해다.
이와함께 은행ㆍ보험 등 금융기관의 주식투자 규제 완화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증시에서 기관 역할을 되찾기 위해서는 외부 위탁운용 비중을 늘리고 운용 평가를 중장기적 바꾸는 등 선진국형 자산운용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곤기자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