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원내대표의 '체면' 때문만이 아니라도 정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가뭄, 경기회복을 위해 추경의 적기 집행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다급한 상황에 있었다. 김무성 대표 또한 25일 미국 방문을 앞두고 추경 처리를 매듭짓고 가겠다는 입장이어서 원 원내대표의 협상 결과에 여권 내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원 원내대표는 더욱 몸이 단 상황이었다. 당내에서는 4선 중진인 원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의문부호를 던지는 시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임위원장과 당 정책위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기는 했지만 야당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적은 별로 없었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확실한 협상 능력을 보여주면서 원내 운영 동력 기반을 마련해야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걱정이 많았던 것.
이런 여권의 조급함을 잘 알고 있는 야당은 다급한 상대를 앞에 두고 '급할 게 없다'는 식으로 협상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다급한 원 원내대표의 스텝이 꼬이는 상황도 눈에 띄었다. 지난 21일 여야 원내대표 협상 과정에서 이종걸 원내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지도부는 저녁 무렵 협상을 중단하고 밤늦게까지 만찬을 즐기다 오는 여유를 부렸다. 그럼에도 반드시 이날 중 합의안을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원 원내대표는 늦게까지 야당을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협상 후 상황을 지켜봤던 국회의 한 관계자는 "술을 마신 건 저쪽(새정연 원내지도부)이었는데 원 원내대표의 얼굴이 더 빨개져 있었다"고 말했다.
원 원내대표는 야당의 주장대로 추경안 협상안의 부대의견에 '법인세' 관련 내용을 넣어주는 쪽으로 마지막 카드까지 던지면서 총력을 기울였다. 22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 같은 카드를 원 원내대표에게 위임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상당한 협상권 재량을 인정받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더 커진 셈이다.
마지막 남은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24일 추경 처리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원 원내대표의 입지도 일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이기는 했지만 최종적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만약 합의가 무산되면 전임자이자 한때 러닝메이트였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비교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도 원 원내대표로서는 부담스럽다.
비박계의 한 전직 의원은 원 원내대표에 대해 "첫 과제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며 "첫 협상에서 '약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앞으로도 계속 야당에 끌려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