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8월 27일] 홀대 받는 '백제관음'

"백제관음(百濟觀音) 주변에 놓인 금색 향로나 꽃장식이 너무 산만해서 정작 작품을 관람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작품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현지 관람객)

"국보 장식은 현과 정부에서 지시하는 것이므로 임의로 바꿀 수 없습니다."(호류지 관리인)

휴가를 맞아 일본 나라현의 호류지(법륭사ㆍ法隆寺)가 소장한 백제의 목조불상인 '백제관음'을 보러 갔다가 한국인 관람객과 현지 관리인이 나누는 대화를 들은 내용이다. 7세기 초에 제작된 백제관음은 일본 아스카 시대의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유물로 팔등신의 날렵한 몸매와 다양한 감정을 함축한 표정이 탁월하다.


귀화한 백제 사람이 만들었다는 설명과 함께 일본에서는 '구다라(백제)관음'으로 불리며 지난 1951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 인도의 간다라 불상이나 통일신라의 신격화된 불상, 고려 이후 조선까지 도식화된 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한중일 삼국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한국화'된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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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계적 유산의 현재 모습은 퍽이나 쓸쓸했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백제관음은 사찰의 중심부인 금당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담징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1999년 신축된 별채식 전시장으로 옮겨졌다.

문화재 보존의 이상적인 형태는 원래 위치에 그대로 두는 것이다. 존재의 맥락과 생성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있을 때 비로소 의미와 가치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제관음은 유리 상자에 갇힌 채 싸구려 금색 장식품에 가려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국보로 대접받고 있다고는 하나 마치 일본이 백제의 예술적 영향을 단절하려는 양 '홀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조선왕실 의궤를 비롯한 우리 문화유산의 반환 의사를 밝혔지만 기쁨은 잠시일 뿐 해결할 문제는 여전히 많다.

일본에 산적한 한국 문화재에 대한 명확한 확인과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다. 백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조형예술이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실마리는 한일 문화관계 규명에 결정적이다. 유물의 반환뿐 아니라 문화적 자부심의 반환이 함께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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