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3월 24일] 금융쏠림 현상이 부르는 위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요즘 경제위기 극복이 불확실한 상황에 빗대 즐겨 쓰이고 있다. 잔설(殘雪)가지 위에 앉아 있는 참새의 시린 발이 걱정되는 올 봄에는 이 말이 제격인 듯하다. 다행히 동계올림픽의 여왕 김연아가 선사한 환희와 감격 덕분에 유난히 길고 변덕스러웠던 겨울을 지나기가 한결 수월했고 여전히 냉기가 서린 서민경제의 시름도 잠시나마 덜 수 있었다. '김연아 신드롬'은 박세리의 우승이 그러했듯 '김연아 키즈'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차기 동계올림픽의 피겨는 그들이 메달 색깔을 놓고 경쟁하는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인 쏠림현상의 덕분이기도 하다. 충분히 예측가능했던 금융 위기 그러나 이러한 쏠림현상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폐해가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필자가 최근 공역한 조지프 티브먼의 저서 "더 머더 오브 리먼브러더스(the Murder of Lehman Brothers)"는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단초가 바로 '금융쏠림' 현상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진행된 '금융쏠림'의 재앙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는데도 무시됐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탐욕에 눈이 어두운 인간이 예고된 재앙을 애써 외면한 결과인 것이다. 제1단계로 한 총명한 금융전문가가 소위 '대박'을 창출하는 금융기법을 고안해낸다. 리먼브러더스가 일찍이 개발한 서브프라임이 단적인 예다. 제2단계에서 금융전문가는 신금융상품에 내재된 리스크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박 수익률을 미끼로 최고의 엘리트로 구성된 동료 집단을 설득시킨다. 제3단계는 금융전문가가 당초의 꿈대로 큰 수익을 내는 동시에 이 신기법의 연금술이 금융시장에서 숭배 받기 시작한다. 내로라하는 투자은행(IB)과 블루칩 기업들도 이 '마술 양탄자'에 동승하기 위해 줄을 선다. 제4단계에 이르면 경쟁사들도 '대박'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재빨리 복제상품을 고안해낸다. 바로 이 시점에서 금융상품과 자금 및 인력을 빨아들이는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시장은 최면상태에 빠진다. 제5단계는 대박상품을 맹신하는 낙관주의자 집단들이 몰려드는 최종적인 혼란단계로 들어서며 금융위기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매년 500억달러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쏟아내면서 월가의 신상품을 선도하던 리먼브러더스가 이 과도한 쏠림의 중심에 서 있었다. IB들은 각종 파생금융상품(CDSㆍRepo 및 증권대차 등)으로 헤지펀드와의 거래를 과도하게 확대해왔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과소평가됐던 리스크가 교정되면서 버블이 터지자 금융자본시장의 자금공급자가 급감하고 유동성은 고갈된다. 결국 담보 인출사태와 거래선 유출 등 IB의 위험이 상업은행으로 전염된 것이다. 이른바 시장이 기능부전에 이르게 되는 시장형 시스템 리스크가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리먼브러더스도 서브프라임시장의 위기를 인식하고 포지션을 축소해왔지만 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라는 덫에 걸려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형 금융인프라 구축 필요 혹독한 고통을 치른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각국은 이러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금융시장 '조기경보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위기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불건전 및 부적정 행위에 의한 쏠림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 마련과 시스템 리스크를 차단할 수 있는 장외파생상품청산소(CCP) 도입과 같은 새로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주요의제로 다룰 예정이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우리나라는 월가의 '대박'상품에 대한 노출이 적어 금융위기에 따른 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피해갈 수 있었다. 또한 증권대차나 Repo 관리시스템이 예탁결제원과 같은 공적 인프라를 중심으로 발전돼왔기 때문에 리스크 통제가 용이했던 점도 큰 도움이 됐다. 이는 앞으로 신금융상품을 위한 인프라구축에 있어 한국형인프라의 장점을 유지ㆍ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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