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경우가 잦다. 분명한 것은 양국 간 경제적 분업관계로 인해 어느 쪽도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독도, 동해표기, 위안부 문제 등 풀리지 않는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일본의 아베 총리는 '신정한론'을 들먹인다. 한일병합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딱히 대책이 없어 갑갑하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그 힘은 어디서 났을까. 돌이켜보면 양자가 모두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했기에 우리에겐 더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일 실체 제대로 알기가 먼저 일본의 실체를 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일본에 30년이 뒤졌다는 주장에 발끈할 수 있지만 수긍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일본 인구는 우리의 2.5배, 2012년 국내총생산(GDP)규모는 우리의 5배 정도가 된다. 일본의 1인당 GDP는 약 4만7,000달러로 우리의 2배가 넘는데 이 지표들은 단기간 넘어서기 어려운 수치다. 국토도 넓고 인구가 많아 내수로 지탱할 수 있지만 우리는 무역의존도가 100%에 육박하는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다. 우리의 GDP 대비 가계 순금융자산 비율은 103.6%인데 이는 30년 전인 1982년 일본 수준이다.
산업에서 반도체·전기·전자제품·조선업에서 우리가 앞서지만 철강·기계·자동차는 아직 일본과 격차가 크다. 일본 총리가 우리 대기업의 사활을 근거 없이 농담 삼아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일본 처지에서 우리를 바라볼 시점이다.
필자가 본 일본 사회는 매우 안정돼 있다. 도시와 농촌이 조화롭게 정비돼 있고 교통망도 원활하다.농촌 고령화는 우리와 같지만 겸업농이 많아 도농 간 소득격차는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 일본인들은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치안도 양호하다. 잦은 천재지변으로 위기경험이 많아 위기대응 능력도 탁월하다. 위기시에도 매우 질서정연하며 쉽게 감성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에게도 매우 친절해 속내를 알기가 어렵다 한다. 국민의 70%가 난 중산층이라고 대답할 만큼 허리가 견고한 선진국이다.
'잃어버린 20년'이란 표현처럼 저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보다는 이념적 갈등이 적으며 천황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있어 연대의식이 강한 국민이다. 일본도 평화헌법에서 인류공영을 지향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등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과 정치인의 행태는 독일과 전혀 딴판이다. 대지진으로 힘겨운 이웃을 위해 우리가 초등학생부터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했으며 금융위기 때 통화스와프 협정 해제를 선언했던 일본이다. 다시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어 더 이상 늙은 호랑이가 아니다.
역동성·경쟁력 키워야 진정한 극일극일(克日)의 당위성엔 이론이 없지만 방법론에는 공감대가 약해 보인다. 석학 피터 드러커가 향후 50년도 한국이 변화의 중심에 설 것이라 예언했으며 미래학자 짐 데이토 교수도 미래사회 모델국가로 한국을 들었다.
우리에게는 창조경제를 이끌 용광로와 같은 원동력이 필요하다. 국가사회 융합의 기반이 되는 도덕성과 통섭의 지혜가 바탕이 돼야 한다. 여기에 역동성도 있어야 한다. 탁월한 정보통신기술과 인프라는 우리 특유의 역동성과 시너지를 살리는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기업에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주고 기업은 윤리경영에 더 많은 힘을 배분해야 한다. 경쟁이란 피차 힘든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중국은 동북공정, 일본은 신정한론으로 또 한편에서는 핵무기로 위협하는 판국에서 대응전략을 갖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열강을 이웃에 둔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