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3년 이내에 무차입 경영을 이룰 것입니다. 아울러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것 보다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드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벽산건설 정종득(41년) 사장은 “98~99년은 빚을 갚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고, 2000~2002년은 외형을 키우는 데 매진해 왔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으로 속이 꽉 찬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의 방편으로 당분간 절대 무리하지 않고 매년 1조~1조2,000억원 규모의 적정매출을 유지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정 사장은 벽산건설을 워크아웃에서 졸업 시킨 장본인. 한국산업은행, ㈜쌍용 등을 거쳐 83년 이 회사에 입사, 올해 62세로 환갑을 훌쩍 뛰어 넘었지만 여전히 현장을 진두지휘 하고 있다. 건설업계 CEO 중 몇 안 되는 원로로 꼽힌다.
그가 벽산의 경영전략을 안정 위주로 전환한 데는 회사가 명실상부한 `클린컴퍼니`로 거듭났기 때문. 부채비율 무려 9,300%에서 239%로 낮아졌고, 이자보상비율도 99년 1.3배에서 지난해 9월말 3.2배로 높아졌을 뿐더러 올해 총 수주 잔고가 5조5,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벽산건설은 탄탄한 회사로 거듭났다.
정 사장은 “워크아웃 시절 전 직원 및 가족이 미분양 아파트 세일즈에 나섰고, 1,200여명의 직원이 550여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다”며 “개인적으로는 의사로부터 위궤양 말기 증세라는 통보까지 받았을 정도라”며 그 때를 회고했다.
경영전략 전환에는 시장환경 변화도 한 원인. 그는 “앞으로도 수도권 중산층을 겨냥한 주택시장은 그런 데로 장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현재 건립되고 있는 아파트ㆍ주상복합 등이 대거 입주하는 2~3년 뒤에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여 보수적인 관점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때로는 공격적으로, 때로는 수비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한 데 앞으로는 `따 놓고 보자는 식`의 전략을 구사했다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원로 입장에서 본 건설업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정 사장은 “건설업의 최종 목표는 인간을 위한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주택건설사들이 이 같은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본인 스스로도 도시가 아파트 일색 위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볼 때 건설사 CEO로 걱정스럽기까지 하다는 것.
그는 또 건설업계가 사회 간접자본(SOC) 분야의 첨병이 되어야 된다고 덧붙였다. 정 사장은 “건설회사의 존재가치는 바로 SOC 부문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찾을 수 있다”며 “동종 업체, 관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사회간접자본 시설 분야에 적극 뛰어들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벽산 역시 워크아웃에서 완전히 벗어난 만큼 앞으로는 토목ㆍ환경ㆍ플랜트 등의 투자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SOC 수주 시장의 본격 참여를 위한 특별팀을 신설했다.
분양가격 상승세가 계속되고 이에 덩달아 기존 주택 값도 오르는 근본 원인에 대해선 재건축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 정 사장은 “주택 값 상승의 주요 원인은 바로 재건축 때문”이라며 “이런 점에서 재건축 시장을 규제한 현 정부의 정책은 바람직 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재건축을 지양하고 대신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노후 불량주택의 재개발 사업에 정부와 건설업계가 더 관심을 갖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건설업의 주요 고객은 국민. 그런데 현재 건설업계에 대한 일반 수요자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집 장사로 돈만 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은 작금의 현실이다.
정 사장은 “건설업계가 고객인 국민에게 나쁜 평가를 받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현재처럼 대다수 건설사가 집 장사에만 나서는 상황에선 좋은 호평을 받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벽산은 종업원 뿐 아니라 주주, 금융기관, 고객, 사회 등으로부터 `벽산하면 좋은 회사`라는 평을 받는 게 궁극적인 목표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사장은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돈을 번 과정이 올바르고 투명한 건설사가 21세기의 승자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 경영철학과 스타일
`인지좌여락(人知坐輿樂) 불식견여고(不識肩輿苦)`. 다산(茶山)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이 구절은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지, 가마 메는 괴로움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 사장은 다산의 이 글이 본인의 경영철학을 잘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경영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동양식의 감성ㆍ인본주의`이다.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재산은 바로 `사람`. 그러나 서구식의 합리적ㆍ이성적 경영은 `사람`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게 정 사장의 진단이다. 인간을 중시하는 동양식의 감성경영이 정 사장이 줄 곧 추구해온 경영의 핵심이란 것이다.
그는 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 한창 나이 때는 젊은 직원들과 술 자리도 많이 했다. 상사와 부하, 동료와 동료 등 직원들 간의 인간적 커뮤니케이션은 회사 위기 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정 사장은 때론 부하 직원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데 이는 그 직원과 인간적으로 더욱 다가서기 위해서다. 워크아웃을 단시일 안에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동양식의 감성경영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힘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
경영 스타일은 때론 `불도저`로, 때론 `순한 양`처럼 하는 게 특징. 제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공경적 전략이 요구된다고 하면 과감하게 나서고, 그렇지 않을 땐 수성 전략을 구사한다. 공경적 경영만이 절대 능사가 아니며, 한 번 숨을 고를 줄 아는 것이 제2의 도약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 정 사장의 지론이다.
◇약력
▲1941년 전남 보성 출생
▲1959년 목포고등학교 졸
▲1965년 서울대 상과대학 졸
▲1965년 한국산업은행 입사
▲1976년 ㈜쌍용 입사
▲1983년 벽산건설 입사(이사)
▲1993년 벽산건설 대표이사
▲1994년 ㈜벽산 대표이사
▲1998년 벽산건설 대표이사
<이종배기자 ljb@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