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은, 제구실 못하는 은행대신 '구원투수' 로

韓銀, 곧 기업어음 매입<br> "흑자도산으로 인한 경제혼란 사전차단" 강력 의지<br>특수목적사(SPC)설립 통한 매입방안이 가장 유력


한국은행이 또 하나의 ‘비상 수단’을 꺼내든다. 은행권의 자본확충을 위한 펀드에 자금을 투하하는 데 이어 이번에는 한계에 처한 기업들의 자금 물꼬를 터주기 위해 기업어음(CP) 매입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돈줄을 죄고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아 자금시장이 말 그대로 ‘돈맥경화’에 빠져든 상황에서 자칫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기업들이 흑자 도산할 수 있고 이 경우 실물경제로 위기상황이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 미증유 카드 왜 뽑나=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은의 CP 매입 결정은 은행권 자본확충펀드 지원보다 더 어려운 결정사안”이라고 토로하면서 “하지만 상황이 워낙 비상국면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매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회사채는 만기가 길어 단기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중앙은행의 취지에 벗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매입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만기 3개월 이내의 CP까지는 손 댈 수 있지만 1년 이상의 회사채는 중앙은행의 자금이 묶이기 때문에 발을 담그기가 곤란하다는 얘기다. 일단은 단기 자금의 숨통을 터준 뒤 회사채 매입 등의 조치는 추후 시장 동향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은이 CP를 매입한다면 기업에 직접 자금을 대준다는 측면에서 58년 한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만큼 기업 자금사정이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기업의 자금 루트는 연말로 들어서면서 사실상 봉쇄된 상황이다. 자기 살기도 바쁜 은행들은 한은이 아무리 유동성을 공급해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돈줄을 죄고 대출을 꺼리고 있다. 장기 자금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 역시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기업들은 결국 단기 자금 융통시장인 CP 발행에 의존하려 하지만 매수세력이 없어 이마저도 길이 막혀버렸다. 중견 A사의 자금 담당자는 “CP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끌어다 쓸 판국”이라며 하소연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CP 매입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은은 이미 최근 대폭 금리인하, 은행에 대한 사실상의 출자 발표 등 신용경색 완화를 위해 단계적인 비상조치를 꺼내고 있다. 한은의 액션플랜에 벤치마킹이 되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10월 말부터 CP 매입에 나섰고 지난주 말에는 일본 중앙은행(BOJ)마저 CP 매입을 천명했다. 한은도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까=한은이 CP를 매입하는 방식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은행채처럼 공개시장조작 대상증권에 포함시켜 환매조건부(RP) 방식이나 단순 매입하는 방안이다. 이는 금통위가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라고 전제하지 않더라도 규정만 바꾸면 사용할 수 있다. RP 대상에만 포함시키면 단순 매입도 가능하다. 문제는 CP의 만기가 너무 짧아 RP로 운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RP 대상에 국고채ㆍ은행채 등 모든 채권이 포함돼 CP 거래 규모가 작아질 수 있다.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 매입할 경우 한은이 안전장치 없이 위험을 그대로 떠안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은이 일일이 신용등급을 따져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다음으로 한은이 특정 은행에 자금을 대줘 CP를 매입하는 경우도 따져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은행으로서는 BIS 비율 하락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성은 높지 않다. 이에 따라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는 것이라는 게 한은 내부의 진단이다. 한은이 SPC를 만들어 출자한 뒤 이 업체가 CP를 집중 사들인다는 구조다. 은행 자본확충 방안과 유사하다. 일단 한은과 법인을 별도로 해 위험노출을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잠재적 손실 부분인데 이는 미국처럼 정부의 신용보강 등이 더해지면 가능하다. 미국은 정부에서 10% 수준에서 손실을 보전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SPC가 발행하는 후순위채를 매입하거나 국회의 동의를 얻어 일부 신용보증하는 형식 등 다양한 지원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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