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문화적 주제로 재구성한 주기율표

■원소의 세계사(휴 앨더시 윌리엄스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br>연금술사 오줌서 발견한 '인'<br>사상·진보·계몽의 상징된 사연 등<br>힘·불·기술 등 5가지 주제 구성<br>원소에 숨겨진 이야기 집중 조명

실험실에 다양한 원소 기호들을 적어 넣은 병들이 진열돼 있다. 저자는 주기율표가 하나의 구성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원소 각각이 갖고 있는 특징을 파악함으로써 인류 문명사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사진제공=알에이치코리아


1669년 함부르크의 연금술사인 헤니히 브란트는 자신이 찾으려는 금과 짙은 황금빛 액체, 즉 인간의 소변 사이에 성스러운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이에 많은 소변을 모아 증발시켰고, 잔류물을 추출했다. 그는 증류할 때 생긴 증기가 괴기스러운 빛을 발산하며 증기를 응결시켜 얻은 밀랍 같은 하얀 물질의 내부에서도 똑같은 빛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증류기에서 빠져 나와 공기와 접촉하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브란트는 자신이 굉장히 놀라운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중략) 인이라는 원소는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난다. 인이 내는 빛은 공기에 노출될 때 표면에 잠깐 생성되는 산화물이 연소하는 데서 나온다. 브란트가 발견한 물질이 인이라는 사실은 300여년이 지난 197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확인됐다. <본문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 화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웠던 주기율표는 각 원소의 본질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 채 암기의 대상으로만 각인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원소 각각이 담고 있는 문화적 궤적을 추적하며 우리가 원소기호로만 인식하는 주기율표에 역사의 향기를 불어 넣는다.

저자는 "주기율표가 하나의 구성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원소간 특정한 공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매우 영리한 방식으로 원소들을 정렬한 연상 기호 모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원소들을 새롭게 분류하는 문화적 주제를 찾고, 마치 인류학자가 작성한 것처럼 힘, 불, 기술, 아름다움, 흙 등 5가지 주제로 문화적 주기율표를 완성했다.


로마 제국의 청동, 스페인의 황금, 영국의 철과 석탄처럼 제국의 힘은 언제나 원소를 소유하는 것에서 비롯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초강대국 사이의 균형은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으로 유지됐다. 1장인 '힘'에서는 부의 상징으로 축적되고, 통제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던 원소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황금(Au)'은 고대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대항해 시대의 탐험가들 역시 '엘도라도'를 찾아 남미로 향했다. 스페인 탐험대는 잉카의 황제를 볼모로 붙잡아 잉카 제국을 지배하려 했다. 그러나 황제는 11톤에 달하는 황금을 주는 대가로 자신을 풀어달라고 요청했고, 금을 얻어낸 스페인 탐험대는 약속을 어기고 황제를 처형해버린다. 잉카 제국을 완전히 소유해 더 많은 황금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잉카 제국 그 어디에서도 황금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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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불'에서는 타면서 내는 빛이나 부식 작용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원소들에 대해 소개한다. 황(S)은 재난과 정화의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황은 성서에 14번 언급됐는데, 이때마다 형벌과 파괴의 장면이 등장한다. 자연발화는 대체로 인(P)과 관련한 것이었다. 1700년대 중반 스웨덴 화학자 칼 셸레와 요한 간은 인이 뼈의 중요한 구성 성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으며 이때부터 인은 사상과 진보, 계몽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3장 '기술'에서는 우리가 "납은 무겁고 주석은 저렴하며 은은 처녀의 순결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로댕의 걸작 '생각하는 사람'이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자세를 하고 있지만, 동상이 균형을 잡고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비밀은 조각 내부에 납(Pb)으로 만들어진 평형추에 숨어 있다. 납은 또한 부식되지 않기 때문에 내용물이 영구히 보존된다. 따라서 시신을 보존하는 관으로도 자주 이용됐다. 4장 '아름다움'은 많은 원소들의 화합물과 다른 원소들의 빛이 세상을 어떻게 채색하는지 증명한다. 프리드리히 슈트로마이어가 카드뮴(Cd)을 발견한 것은 '색채의 예술'에서 가장 격렬한 혁명을 일으켰다. 그가 약제로 쓰던 산화아연을 가열하자 처음에는 노란색, 그 다음에는 오렌지색으로 변했던 것이다. 슈트로마이어는 짙은 노란색을 띤 황화카드뮴을 만들었고, 이것이 파란색 안료와 잘 섞이는 특징을 강조해 화가들에게 적극 권유했으며 상업적인 안료로 자리를 잡는다. 5장 '흙'에서는 수많은 원소들이 왜 특정한 장소에서 발견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수많은 원소들에 숨겨진 이야기를 치밀하고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평면이었던 주기율표를 입체적으로 진화시켜 과학을 새롭게 해석하는 눈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2만원.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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