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해외로 유출된 개인 자본이 200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자본유출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이탈 방지책들을 쏟아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제 그런 것들은 옛날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2,000억달러를 넘은 외환보유고는 환율을 끌어내려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렸다.
환율안정을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을 무리하게 조성하면서 지난해 손실액만 10조원을 넘었다. 넘치는 달러가 오히려 한국경제에 부담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정부가 외국환거래 규정을 전면 재정비하기로 한 데는 이런 절박한 현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
외환 자유화와 관련된 외국과의 약속은 이런 분위기와 절묘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환란 이후 외환제도는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었다. 지난 99년 국내외 자본거래 등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외국환관리법’을 폐지하고 ‘외국환거래법’을 시행한 데 이어 2001년에는 개인송금한도 제한을 폐지하는 2단계 자유화 조치가 도입됐다.
이는 2005년 말 ‘일몰조항’에 따라 자동 폐지된다. 지난해 자본유출이 문제화할 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3단계 자유화를 5년 가량 추가 연장할 방침이었다.
외환거래의 족쇄를 조금이라도 더 채우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개방론자인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취임 이후 사정이 크게 바뀌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달러가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외환거래의 빗장을 푸는 작업의 무게중심은 기업 부문에 쏠려 있다. 2차례 자유화에도 기업의 해외투자에는 적지않은 걸림돌이 남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재경부에 건의한 개정항목만 36개다.
자연스럽게 정책 개정의 초점은 기업의 해외투자 촉진에 맞춰졌다. 해외자금을 3,000만달러 이상 조달할 때 재경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돼 있는 기준을 5,000만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우선 검토대상이다. 해외로부터 단기 외화자금을 차입하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해외 부동산 취득 절차도 간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사업을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해도 한국은행에 신고, 수리돼야 된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신고서 접수가 거부되는 사례가 적지않다”고 말했다. 부동산 사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신고대상을 한은에서 지정거래 외국환은행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개인 부문은 추가로 풀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다만 당초 자본유출 방지를 위해 논의됐던 증여성 송금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백지화될 듯하다. 증여성 송금은 현재 연간 1만달러 이하까지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데 정부는 이를 1만달러 아래로 낮추거나 일정 금액 이상을 보낼 경우 사용목적 입증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결국 1만달러 이상인 경우 국세청에 통보하도록 한 규정은 현행대로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예정대로 내년 1월로부터 3단계 외환 자유화가 전면 실시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5년 가량 추가 연장하는 대신 빗장을 더 푸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가 구성한 태스크포스에서 논의될 부분도 여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자본유출에 대한 반국민 정서가 워낙 심하고 외환시장의 체질도 아직 허약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해외 유출에 대한 반국민 정서를 풀어야 하고 국민의 컨센서스를 어떻게 도출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