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최악의 테러' 美쇠락 출발점 될수도

'진주만'과 달리 적 불투명 장기전불가피 지난 11일 세계무역센터(WTC)와 미 국방부 청사에 대한 항공기 테러가 미국의 세계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번 테러와의 전쟁을 진주만 공습과 같이 세계 최고의 슈퍼파워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은 지난 41년 당시와 크게 다르며 부시 정부의 생각과는 달리 미국의 힘이 위축되는 시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번 테러는 그 준비가 비밀스럽게 진행되면서 정보당국이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진주만 폭격과 유사하다. 갑작스러운 테러에 따른 분노로 미국인의 80~90%까지 이번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도 일본의 진주만 폭격 당시와 비슷하다. 그러나 지난 41년 12월 7일과 2001년 9월 11일의 상황은 정치ㆍ경제 여러 면에서 정반대의 국면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치적으로 진주만 폭격은 일본이라는 명확한 적이 있었다. 미 정부는 즉각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으며,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명확한 응징 상대를 갖고 있지 못하다. 전쟁을 선포할 국가라고 해야 고작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보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도이다. 라덴이 이번 사태의 주모자인지도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다. 따라서 미국은 전쟁에 대한 공식적 대상없이 10~20여년간 테러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이번 전쟁은 가뜩이나 힘든 미국 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지난 41년은 미국이 대공황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상승기에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진주만 폭격으로 2차 세계대전에 공식 참전한 미국은 그러나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세계의 중심에 올라 설 수 있었다. 반면 2001년 상황은 매우 다르다. 지난 18년간 상승하던 주식시장은 하락세로 반전됐고 미국은 경기 둔화에 따른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실제 지난주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있기 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경제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으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 상당폭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테러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도 미국의 모든 신문은 소비자들의 경제에 대한 신뢰가 악화되고 있는 데 따른 불안과 아시아ㆍ유럽ㆍ미국이 동시에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가득 채워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와 상관없이 이미 미국의 쇠락은 10년 장기호황을 이끈 나스닥과 신경제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면서 시작됐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더 급속히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테러발생 전(前)에 이미 최고점 대비 60%가량 하락한 상태이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2ㆍ4분기에 이미 거의 침체 수준에 도달했던 미국의 경제 성장률도 테러 여파로 금융ㆍ 여행ㆍ유통 부문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3ㆍ4분기 본격적인 침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19세기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쇠락하는 등 역사 속의 초 강대국들은 특정 전쟁을 기점으로 그 자리를 다른 국가에 내줬다. 역사적 경험에 비쳐 이번 테러가 그 동안 세계 경제의 정점에 서있던 미국이 쇠퇴하는 계기로 작용할 지도 모른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장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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